소화기가 약해서 잘 안 먹는 아이

입력 2011-11-08 11:11

[진료실 칼럼: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 어떻게? ②]
글·이현희 강동 함소아한의원 원장


[쿠키 건강칼럼] 입 안으로 들어온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끊임없이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장기가 바로 ‘비위(脾胃)’입니다. 먹은 것을 소화·흡수시켜 에너지로 써야 하니 비위가 활발히 잘 움직일수록 기능이 좋다고 볼 수 있는데요. 위치상으로도 소화를 담당하는 기관인 비위는 우리 몸의 중앙(중초)에 자리 잡고 있어 소화기가 약해 기능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온몸의 기운순환이 막히게 됩니다. 폐와 심장은 상초에, 신장과 방광은 하초에 자리 잡고 있는데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소화기에서 문제가 생기면 상초와 하초의 교류가 막혀 온몸의 기운순환이 막히게 됩니다. 그러니 소화기능은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장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위를 ‘후천의 근본’이라고 한 것입니다.

◇입이 짧고 느린 성장… 선천적으로 비위가 약한 경우=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비위(소화기)가 약해 잘 안 먹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난 아이 역시 그런 경우였습니다. 얼굴이 누렇고 팔다리에 힘이 없어 보이는 딱 보기에도 허약해 보이는 남자아이였는데 도무지 배고픈 줄도 몰라서 한 끼 두 끼 굶겨 봐도 잘 먹지 않고 입이 짧아 한 입 먹으면 바로 돌아서는 뱃골도 작은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진찰해보니 선천적으로 소화기를 약하게 타고난 아이였습니다. 또래에 비해 성장도 좀 느린 편이었고 유난히 침도 많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주기적인 소화기보강이 필요한 아이고 어머님이 많이 힘드시겠지만 집에서도 꾸준히 노력해 나가셔야 함을 말씀드리며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입맛도 까다로워 처음에는 한약을 먹는 것도 힘들어 해서 농축해 양을 줄인 한약과 소화기를 도와주는 침치료와 뜸치료로 시작을 했습니다. 차츰 소화기능이 나아지면서 밥 먹는 양은 비슷해도 체중 퍼센타일이 차츰 올라갔습니다. 먹는 양보다는 먹어서 소화·흡수시키는 능력이 좋아지니 체중도 늘어나고 한약도 좀 더 잘 먹게 되고 차츰 먹는 양도 늘어나게 됐습니다. 이제는 또래 아이들과 비슷하게 잘 먹고 성장 퍼센타일도 표준에 가깝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밥 먹이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저 또한 잘 먹지 않는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아이 밥 먹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가장 힘든 일이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가끔은 예쁜 아기용 식기에 예쁘게 담아 장식도 해가며 식사를 준비해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관심을 다른 곳에 두도록 한 채 마구 아이 입에 밥을 그야말로 쑤셔 넣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또 바로 체하기 일쑤여서 바로 다음끼니를 못 먹기도 하더군요. 우선은 현실적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식단을 짜서 매끼니 비슷한 시간에 먹이며 양을 조금씩 늘려갔습니다. 아이가 서서히 뱃골이 늘어나고 유치원 갈 때쯤에는 편식은 할지언정 먹는 양은 어느 정도가 되더군요. 물론 아프지 않아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소화기를 도와주는 한약을 먹이기도 했지요. 초등학교 2학년 정도부터는 어딜 가도 ‘아이가 정말 잘 먹네요’라는 소리를 듣게 됐답니다.

◇먹는 것을 즐거운 일로 만드는 엄마의 지혜= 이처럼 먹는 것 때문에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먹는 일이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먹는 것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합니다. 식사를 준비할 때 눈요기가 될 정도로 예쁘게 차려주고 가족이 둘러앉아 행복한 기분으로 먹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습니다.

근본적으로 약하게 타고난 비위기능을 다치지 않도록 하고 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는 것은 비장의 운행을 돕고 위장을 맑게 해 운동성을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복부는 항상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좋은데요. 동의보감의 養子十法(양자십법)이라는 육아지침을 보면 등과 배와 발은 따뜻하게 하고 머리, 가슴은 서늘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즉 소화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배를 따뜻하게 해줘야 합니다. 평소에 엄마의 따뜻한 손으로 배꼽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50~100번 정도 하루 두 번 문질러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처럼 타고난 기운이 적더라도 위와 같이 비위를 조리(調理)하면서 먹이는 것에 신경을 쓴다면 소화기능이 나아지면서 건강하게 잘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