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미국에서 찾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약국이다. 사전 정보 없이 미국을 방문해 감기몸살이라도 앓으면 주변에서 약국을 찾지 못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사정을 알고 나면 미국처럼 약을 구입하기 쉬운 나라도 없다. 동네 슈퍼에서 기본적인 감기약, 두통약 등을 쉽게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CVS스토어와 같은 대형 마켓 내에 위치한 약국에서 웬만한 의약품을 살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가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편두통이나 정신과적 질환 등을 앓으면서 약을 먹는 장면이다. 만약 주인공이 타이레놀을 복용했다면 분명히 타이레놀 제조사에서 간접광고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TV를 켜면 약간 과장을 보태 광고의 절반 이상이 제약사 광고일 정도로 약을 자주 복용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다.
이처럼 미국 사회가 약의 천국이 된 데는 사실 너무 비싼 병원비가 한몫을 하고 있다. 민영 의료보험체계의 미국은 병원의 영리활동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민영 보험사의 보험료는 공공 의료보험체계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다. 보험급여를 받더라도 환자 부담금이 많아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 문턱을 넘기 힘든 게 미국의 현실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환자들은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슈퍼에 들러 약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일반 슈퍼에서 웬만한 약들을 다 구입할 수 있게 된 것도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서민들이 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사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가 지난달 허용됐다. 아직은 간단한 의약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 번 둑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듯이 향후 슈퍼 판매 의약품의 종류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진수희 장관은 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통해 접근성이 높아져 소비자의 편의성이 증대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마치기 전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의료보험의 민영화와 영리병원 허용이다. 만약 두 법안이 통과된다면 앞서 언급한 미국 사회의 모습이 조만간 우리나라의 현실로 다가올 게 틀림없다. 턱없이 높아진 의료보험료 때문에 많은 저소득층은 의료보험에서 소외될 것이고 일반 서민들 역시 영리병원의 높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병을 진단해 약을 사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결국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당시 우려됐던 약물 오남용은 현실이 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uletmesmile@kmib.co.kr
[기자의 눈/ 정유진] 약 권하는 사회
입력 2011-08-04 0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