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센터] ‘품위있는 죽음’ 도우미 국립암센터 완화의료팀

입력 2011-07-11 09:57

국립암센터 완화의료팀 김열 교수(가정의학과)

[쿠키 건강] 잘 죽는 것도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누구나 다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질환으로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실천하지는 못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치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병원에서 질병과 싸우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의 품위있는 마지막을 돕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주 목요일 국립암센터 완화의료팀 김열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인터뷰가 있던 날도 오전 8시부터 9시 30분까지 환자 10여명에 대한 완화의료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마친 후였다. 회의에서는 환자가 어떠한 이유로 완화의료팀에 의뢰됐으며 환자가 현재 힘들어하는 점 등 환자의 상태에 대한 의료진 간의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

김열 교수에 따르면 김 교수의 환자 중에서 처음부터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는 없다. 환자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숨이 차고 우울한 증세가 심해 더 이상 치료의 영역으로 커버가 안될 때 해당 질환을 치료하던 의료진이 완화의료팀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완화의료팀이 환자를 찾아 도움을 주는 형태로 환자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는 경우가 많다. 국립암센터 완화의료팀은 2명의 전문의(윤영호· 김열 교수)와 전임의, 전공의 각각 1명씩으로 구성돼 있다. 이밖에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 가정 간호사가 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요시 사회복지사와 성직자가 합류에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

완화의료팀이 방문하면 환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더 이상 치료로 나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고 화를 내거나 ‘완화의료’라는 단어가 생소해 신기해한다. 의료진을 반기는 경우는 드물다. 황영받지 못하는 손님으로 등장한 의료진은 우선 환자의 증상관리를 돕는다. 반응이 없는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통증, 복수(간암 등으로 배에 물이 차는 것) 등을 조절한다. 특히 암환자들은 암이 진행될수록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데, 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항암치료는 마약성 진통제로 통증을 조절하지만 ‘통증’보다는 ‘항암’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에 환자는 통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참는 경우가 많다. 또 마약성 진통제의 양을 늘리는 위해서는 의료진이 계속해서 환자 상태를 관찰하며 약을 투여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는 번거로움도 있다. 완화의료팀은 환자가 마지막까지 고통없이 죽는 것을 돕기 위해 마약성 진통제의 양을 환자 상태에 맞게 조절해 최대한 고통을 줄이는 부분에 신경을 쓴다. 통증으로 인한 고통이 줄어들수록 의료진을 환자들에게 환영받는 손님이 된다.

증상관리와 함께 환자와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정신상담도 실시한다. 환자 죽고 난 다음 사회에 남겨져 상처를 받을 가족들과 대화하고 이들을 위로하는 것도 치료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의료진은 상담 과정에서 환자에게 자신이 암이 말기라는 상태를 받아들이게 하고 병원에서 퇴원해 가족과 함께 마지막을 보낼 계획을 세운다. 퇴원 후 가정으로 돌아간 환자들을 대상으로 가정 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 죽음 맞이하는 환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대단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병원 전공의 시절 심하게 아픈 환자들을 봐오면서 환자들이 그와 같은 고통을 받기 전에 도울 수 있는 가정의학과를 택했다. 그런데 지금은 환자의 마지막을 돕는 일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치료과정에서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있다가 김 교수에게는 아프다는 얘기도 맘껏하고 통증이 조절돼 하루이틀이 지나면 웃는 얼굴로 의료진을 맞을 때 김 교수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김 교수는 "의료가 많은 부분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많은 환자들이 이러한 완화의료 영역에서 케어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죽을을 맞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 김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완화의료 케어를 받는 환자는 평균 14일만에 죽음을 맞는다. 그만큼 마지막까지 가서야 완화의료의 도움을 받는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완화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부정적인 인식 외에도 우리나라의 열악한 완화의료 환경의 영향도 있다.

우리나라는 질병의 치료나 건강검진 등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반해 완화의료분야는 아직까지 활성화 되지 못했다. 치료가 힘들어진 환자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국내에서 암으로 연간 7만명 정도가 사망하는데 이중 완화의료서비스를 한 번이라도 받아본 환자는 9%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완화의료 분야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완화의료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 일반화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또 외국은 암이 아닌 다른 질환도 해당 질환을 질환은 치료하는 의사가 환자의 마지막을 돌볼 정도로 전문 영역으로 취급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가정의학과, 종양내과 일부에서만 완화의료를 하고 있다. 의대과정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교육 내용이 없다. 의사들마저도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없어 치료가 힘들어진 자신의 환자들을 완화의료 치료를 받게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를 개성하기 위해 최근 들어 김 교수를 포함한 완화의료의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모임인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에서 완화의료 세부전공과정을 신설을 논의 중이다.

김 교수는 완화의료를 받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배신당했다”라고 했다. 그동안 의사만 믿고 나을 줄 알고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을 참아왔는데 치료방법이 없어 치료를 중단하면 환자들은 의료진이 자신을 버렸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완화의료는 죽기 전의 환자들만 도와줄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암 치료과정에서 처음부터 완화의료팀과 협력체체를 갖게 되면 환자들과 상담도 하고 환자의 고통관리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며 “이러한 환자들이 치료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됐을 때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접촉해오던 완화의료팀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배신’이라는 느낌을 갖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유진 기자 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