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유진] 돈으로 중증외상 환자 목숨값 계산하는 대한민국

입력 2011-06-16 09:58

[쿠키 건강]“저 같은 수준의 의사는 선진국에 가면 중간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1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된 후 구출과정에서 총상을 입었던 석해균 선장을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냈던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의 말이다. 그는 석 선장의 수술을 성공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는 대신 우리나라 중증외상 의료환경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당시 이 교수는 중증외상 환자 중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우 3명 중 1명은 살릴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선진국 잣대를 들이대면 70~80%는 살릴 수 있다고 반박하며 권역별 중증외상센터의 조속한 설립을 촉구했다.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다 하더라도 국내에서 중증외상으로 숨지는 사람의 숫자가 3만명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제대로 된 치료체계만 갖춰졌어도 그 중 1만명은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중소병원은 말할 것도 없이 대형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으로 이송된 중증외상환자의 예방가능한 사망률 역시 25%로 미국 5%, 일본 10%에 비해 훨씬 높다.

특히 22개 거점외상센터를 설립해 사망률을 10% 수준으로 끌어내린 일본의 예는 우리가 곱씹어 볼 만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10년째 권역별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겠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당초 2010~2012년 사이 6000억원을 들여 전국에 중증외상센터 6곳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성이 낮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사실상 계획을 접고 원점에서부터 수정·변경했다. 이는 의료를 산업으로 규정하고 투입 대비 비용을 뽑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이국종 교수가 의료행위로 인해 1년에 아주대병원에 끼치는 금전적 피해만 8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환자가 퇴원해 돈을 벌고 세금을 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점을 도외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설혹 중증외상환자가 퇴원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목숨을 돈으로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국종 교수가 석 선장을 살리겠다고 나섰을 때 일각에서 ‘영웅심리의 발로’라고 폄하했던 것이나 해당 병원에서도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나서는 이 교수에 대해 떨떠름했을 것이라는 의료계 관계자들의 말도 목숨을 돈으로 계산하는 정부의 시각과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21세기 탈산업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업시대의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 진입을 염원하면서도 여전히 선진국의 커트라인을 소득 2만 달러와 같이 계량적인 수치로 바라보는 점이 특히 그렇다.

우리가 염원하는 선진국은 결코 국민소득으로만 달성되지 않는다. 소득 수만 달러의 중동 국가를 누구도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복지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때 그 국가를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복지의 중심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료체계가 있다.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살릴 수 있는 환자임에도 의료기관이 없어서 또는 돈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다면 소득 2만 달러가 아니라 소득 5만 달러라고 하더라도 그 국민을 행복하다고 바라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