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의 건강세상 돋보기] 논리는 없고 주장만 있는 의사협회

입력 2011-06-08 17:46

[쿠키 건강칼럼] 지난주 금요일(3일) 보건복지부가 의약품 재분류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복지부는 이날 의약품 재분류 검토와 함께 대한약사회에서 제시한 당번약국 확대방안도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 이후 대한의사협회는 결국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가 물 건너갔다는 판단을 내렸고 성명서를 내면서 진수희 복지부 장관의 퇴진을 주장하고 나섰다. 게다가 일반약 슈퍼판매를 주장해온 일부 시민단체도 이 주장에 가세했다.

의사협회가 진 장관 퇴진을 주장하면서 낸 성명서의 골자는 이렇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선택의원제는 추진하면서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불허하는 것은 약사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받아들였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더해 일반약 약국외 판매를 허용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진 장관의 지역구 약사회에서의 행사발언이 알려지면서 의사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참고로 선택의원제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가 한 의원을 지정해 계속 치료받을 경우 환자의 본인부담금을 줄여주는 ‘주치의’ 개념과 같은 제도다. 의사협회는 선택의원제가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 가정의학과·내과로의 환자쏠림현상이 일어난다는 점, 새로운 개업의사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진입장벽이 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이 칼럼을 통해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복지부의 정책집행능력이나 과정, 진 장관의 처신은 차치하고라도 ‘참으로 대단한 의사들의 직능이기주의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먼저 밝혀두지만 진 장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의사협회는 시민단체가 초기에 일반약 약국외 판매를 주장했을 때 침묵을 지키다가 어느 순간 이 주장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의사협회는 그 과정에서의 복잡함이나 이해관계를 따질 필요도 없이 이 주장에 대해서만큼은 줄곧 슈퍼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해열진통제, 소화제, 지사제와 같이 안전성이 입증됐으면서도 가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을 보다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일반약 약국외 판매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거다.

의약분업이 시작되면서 약국이 일찍 문을 닫게 된 것이 이러한 주장이 나오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처방을 받으면서부터 약국은 병의원의 업무시간에 맞춰 근무시간을 조정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응급약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심야시간이나 휴일에는 약을 구할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슬로건을 굳이 내세울 필요도 없이 현행 약사법은 모든 약은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의 순서를 한 번 짚어보자. 이번 복지부 발표는 의약분업 이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논의해보지 못한 의약품 재분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겠다는 뚜렷한 명분도 있고 이와 밀접하게 연계된 의약품 약국외 판매와 관련해서도 분명히 정확한 수순을 밟은 것이다.

의료법과 약사법의 근간, 즉 의료체계를 뒤집어엎지 않는 한 소화제나 지사제 등 일반약을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하려면 재분류를 통해 의약외품으로 빼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들 품목이 일반약으로 분류돼 있는데 이를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하도록 허용한다면 전문약 역시 의사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일반약으로 구분돼 있는 품목이 약국이 아닌 곳에서 판매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분류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바로 이 재분류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뒤에 당번약국을 확대하겠다는 약사회의 주장을 수용하긴 했지만 여기에도 단서가 붙었다.

우선 이 방안에 대한 이행여부를 점검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약사회에 요청하면서 복지부 역시 소비자단체 등과 협의해 모니터링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 즉 일반국민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언제든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의사회는 미리 의약품 슈퍼판매가 안된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의약품 재분류를 제대로 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이는 것이 순서다. 곧 열릴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소화제나 지사제, 해열진통제 등을 어째서 약국이 아닌 슈퍼나 마트, 편의점에서 판매해도 안전한지에 대한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고 진 장관의 말 한마디나 약사회 로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어불성설이다. 만일 충분하고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한다면 의사들이 주장하는 이들 품목의 슈퍼나 편의점 판매가 안 될 일이 없는 것이다. 의사회 추천 4명, 약사회 추천 4명, 시민단체 4명으로 구성된 중앙약심에서 위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재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식기구에서, 그것도 시민단체까지 합류해 합리적으로 논의한 결과 재분류해야 한다고 결정됐는데 이걸 복지부 장관이 하지 않겠다고 안할 수 있는 일인가.그런데도 일의 선후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기존에도 의약사가 서로 영역을 침범하기 않는다는 무언의 합의 때문에 의약품 재분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다. 의사는 전문약이 일반약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약사는 일반약이 전문약이나 의약외품으로 빠지는 것을 두려워해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의사협회는 의사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이익집단이다. 의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영역을 확대해야만 하는 조직이기도 하다. 직능 간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신만의 전문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어느 직능이 살기 위해선 그 직능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이해가 먼저다. 의사협회는 이제 의사가 ‘국민의 의사인가, 의사를 위한 의사’인가를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조창연 의약전문기자 chy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