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암 명의⑩] “췌장암, 미리 겁먹지 말고 희망 가지고 대처해야”

입력 2011-05-17 22:42

‘췌장암 명의’ 서울대병원 김선회 외과 과장

[쿠키 건강] “나는 명의가 아니다.”

대한민국 췌장암 분야 1인자로 통하는 김선회 서울대병원 외과 과장은 자신을 ‘명의’로 추켜세우는 데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명성에 비해 언론 노출이 잦지 않은 그는 국내 최다 췌장·담도암 수술을 집도했으며, 가장 난이도 높은 수술에 속하는 ‘십이지장보존 췌두부절제술’의 국내에서 최초로 시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명의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데는 췌장암의 생존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명의라고 불릴 수 없다는 것이다.

췌장암은 특유의 증상이 없고 전이가 쉬워 치료가 쉽지 않은 암이다. 많은 사람들이 췌장암이 정확히 어떤 암인지는 몰라도, 일단 발병하면 무척 아픈 것은 물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암으로 인식하고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췌장암 1000명 중에 1명만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조기진단의 증가와 수술을 예전에 비해 적극적으로 한 덕분에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진단 후 수술 가능한 환자가 25~30%에 불과하고, 수술 후 5년 생존율이 수술 가능한 환자 중에서 15~20%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췌장암의 생존율을 1% 포인트라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김 교수는 암 중에 가장 독한 암으로 꼽히는 췌장암 분야에서 명의가 될 수 있었다.

1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췌장암의 생존율이 높아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췌장암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에서는 벗어나고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널리 알려진 오해 중 하나인 췌장에 생기는 병이라고 해서 다 췌장암이 아니라는 것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췌장에는 양성 종양도 생길 수가 있고, 양성이 아닌 악성 종양이라고 해서 모두 암이 아니다. 췌장 종양의 경우 치료 경과가 좋은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병이 췌장암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공포 때문에 충분히 치료 가능한 종양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해 병을 키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미국 영화배우 패트릭 스웨이지가 췌장암에 걸려 사망하면서 췌장암의 공포를 자극했다. 하지만 췌장암으로 알려졌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이 아니라 췌장의 악성 내분비세포종양으로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수술할 수 있는 환자 비율이 높아진데다 항암제 ‘잼사이타빈’을 기반으로 하는 전신항암화학요법이 많이 시행돼 췌장암의 재발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췌장암 진단을 받았더라도 내가 생존자에 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게 중요하다”며 “집계된 데이터는 없지만 실제 환자를 치료하면서 보면 희망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치료 경과가 좋다”고 말했다.

췌장암 명의이자 서울대 외과 과장을 맡고 있는 그는 외과를 기피하는 요즘의 상황과 관련해 젊은이들의 ‘도전정신’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외과 중에서도 수술이 어렵기로 이름난 췌담도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췌장암과 싸우고 있는 그의 제자와 후배들의 순수한 열정은 반복해서 칭찬했다.

김 교수는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교수로서도 동료나 제자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교 1학년 때 의대 교수가 되겠다는 구체적이고 확고한 꿈을 가졌던 김 교수는 막상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려고 하니 자신의 말 없는 내성적인 성격이 문제였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는 1시간 강의를 위해 한 달을 꼬박 준비했다고 한다. 한 달 동안 제스처, 농담, 전달방법 등을 연구하고, 연습했다.

지금은 제자들의 논문 한 자 한 자를 꼼꼼하게 챙기며 교수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제자들이 제출한 논문은 새빨간 펜으로 도배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깐깐한 선생님 역할을 하지만 이 덕분에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더 많다. 그는 연구도 진료도 생활도 모범을 보이는 교수가 되는 게 꿈이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명의가 말하는 ‘췌장암’

-췌장암은 조기 진단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췌잠암 특이 증상이 없다. 복통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없이 오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

-조기진단을 위해서는.

“소화가 안 되는 등 소화기 이상 증상이 있다면 CT 검사를 통해 췌장 건강을 살펴야 한다. 건강하던 사람이 없던 당뇨가 생겼을 때도 췌장암 검사를 받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췌장암의 원인은 무엇인가.

“흡연이 지금가지 밝혀진 가장 명백하고도 밀접한 췌장암의 원인이다. 지금까지 비만, 서구식 식습관 등 췌장암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게 몇가지 있었지만 이는 여러 차례 번복됐다. 하지만 흡연은 췌장암의 확실한 위험인자로 볼 수 있다. 췌장암은 폐암 다음으로 담배와 연관성이 높은 암종이다. 췌장암환자 중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2~3배 이상 많으며 하루에 1~2갑 담배를 피우는 환자는 췌장암 발생률이 10배 가까이 높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유진 기자 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