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기훈 서초 함소아한의원 원장
[쿠키 건강] “선생님 아이는 아파도 걱정이 없으시겠어요.” 진료를 하다 보면 가끔 내 책상 뒤에 있는 아들 사진을 보고 엄마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 한의사란 직업 때문에 조금 부러운 마음으로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내 아이가 아파도 걱정은 태산이다.
◇어린 아들에게 장염 옮기는 한의사 아빠
2주 전 나는 몸살과 장염이 겹쳐 많이 아팠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감기에 걸리는데 워낙 몸살이 심하게 오는 편이라 한밤 중 폭풍설사(?)를 한 뒤 그 다음날 도저히 진료하기가 힘들어 먼저 퇴근을 했다. 22개월 아들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뽀뽀도 안 하고 지냈는데 이 녀석이 수요일 밤부터 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목요일엔 하루 종일 먹지도 못하고 토하고 열이 나더니 밤에는 설사를 해댔다. 구토, 발열, 설사가 함께 나타나면 장염이다. 하루 종일 축 늘어져 있는걸 보니 바이러스를 가져다 준 못난 아빠라는 생각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물론 한약을 먹고 하루, 이틀 지나니 좋아지긴 했다.
◇한의사 아들이라고 건강하기만 할까?
나는 한방소아과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전문의 자격에다가 소아과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이 엄마도 함소아한의원 원장으로 5년 정도 일한 경력이 있고 피부과, 이비인후과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아들이 건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심하지 않지만 아토피 증상이 있는데다가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알레르기 비염 증상도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들은 아프고 가려워서 힘들어 하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여느 부모와 똑같이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고 아이가 힘들어 하니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진다.
하지만 다른 부모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아이를 조금 더 믿는 다는 점이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건 아이가 지금은 힘들어하지만 곧, 혹은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이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다. 나에게 이런 믿음을 주는 건 질병에 대해 남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염에 걸려 토하고 열나고 설사를 하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된다. 하지만 아픈 기간 동안 ‘물 많이 먹이고 소화하기 쉬운 음식 위주로 조금씩 먹이고 열이 나면 따뜻한 물수건 등으로 잘 관리해주면 특별한 문제없이 잘 이겨낼 수 있다’라는 장염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까 말이다.
장염에 걸렸다고 병원에 가봤자 지사제, 정장제, 항생제, 해열제 등을 받아오는 것인데, 이런 약들은 설사하지 않도록, 열나지 않도록 하는 약일뿐이지, 장염을 낫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응급실에 가도 탈수, 영양부족을 막기 위해 포도당이 들어있는 링거에 지사제, 항생제를 섞어 줄 뿐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이런 치료법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링거를 맞지 않아도 물을 조금씩 자주 먹이며 집에서 잘 관리하면 아이가 더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루 이틀 못 먹는다고 영양부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질병을 이기는 것은 결국 아이들 자신
진료실을 찾는 어머니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감기는 제가 낫게 하는 게 아닙니다. 어머니가 낫게 하시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가 낫게 하는 거죠.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러스가 소멸되면 감기는 자연스럽게 낫는 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나친 항생제 복용을 삼가고 증상부터 없애보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리는 일입니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아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를 안 아프게 할 수는 없다. 신이 질병을 주신다면 그 질병을 이기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는 역할이다. 한의사인 나는 질병을 잘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진료하는 게 역할이고 부모는 아이에게 나쁜 환경을 없애면서 비록 작은 몸이지만 아이 안에 있는 면역력의 힘을 믿고 잘 도와주는 것을 해야 한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아이를 믿어주자. 우리 아이들, 걱정만큼 그렇게 약하지 않다. 항생제를 밤낮 먹지 않아도, 밥 대신 감기약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스테로이드 로션으로 도배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힘으로 병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씩씩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김기훈 원장은 서초 함소아한의원의 소아과전문의로 한의학을 통한 자연치료에 힘쓰고 있으며, 22개월 아들을 두고 있다>
[육아일기] 한의사라 특별하다? 약대신 아이를 믿어요
입력 2011-05-16 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