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암 명의⑧]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일단 수술하라”

입력 2011-05-06 06:38

‘폐암 명의’ 삼성서울병원 심영목 암센터장(흉부외과)

[쿠키 건강] 폐암 선고를 받고 제대로 수술조차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환자들을 계속 본다는 것은 의사로서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을 도와줄 방법은 분명 있었을 테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힘든 길을 외면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동료들은 모두 말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고 마침내 국내 최고의 ‘폐암 명의’로 우뚝 섰다.

삼성서울병원 심영목 암센터장이 국내 최고의 폐암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압도적으로 많은 수술 례수에서 기인한다. 그가 1990년대 초 1년 동안 폐암 환자 80여명, 식도암 환자 60여명을 수술한 뒤 그 결과를 학회에서 발표했을 때 의료계는 그 엄청난 숫자에 경악했다. 심 센터장은 지금까지 약 2200례의 수술을 집도했으며, 그중 폐암수술이 1500례 이상을 차지한다.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많은 수술례수를 기록한 데에는 그가 폐암 수술을 시작했을 무렵 수술만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가 드물었다는 점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일단 수술을 해서 환자를 낫게 하겠다는 그의 집념의 산물이기도 하다. 수술 의사가 워낙 부족해 그가 폐암 전문의사가 되려 했을 때 마땅히 배울 곳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시행착오를 혼자 감당해야 했고 이는 이후 폐암 수술 발전에 큰 주춧돌이 될 수 있었다.

그의 신조는 ‘작으나마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수술을 하라’는 것이다. 그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수술을 하기 위해 배를 갈랐을 때 암세포가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때였다고 고백했다. 의사로서 그는 그런 환자들 하나하나를 살려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수많은 수술을 통해 말그대로 새로운 폐암 수술의 길을 확장했을 뿐 아니라 폐암 수술의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심 센터장은 후배와 제자들에게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수술하라’고 조언해준다.

수술 방법을 발전시키고 이전의 의술로는 생존할 수 없었던 환자들의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놓은 성과를 이루기까지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심장수술은 이후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만 폐의 경우 일정 부분을 절제한 후에는 아무리 수술이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상태가 이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들었던 심 원장은 환자들의 완치율을 높이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듯 연구와 수술에 임했다.

그 결과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는 1994년 개원 이래 16년 만에 완치에 가까운 ‘폐암 근치적 수술’ 5000례를 돌파하는 개가를 올렸다. 지난달 25일 이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단순한 수술례수뿐 아니라 수술 결과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암센터인 슬로운 캐터링이나 엠디앤더슨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에 따르면 병원에서 수술 받은 환자 1785명의 폐암병기에 따른 5년 생존률이 1A 82%, 1B 72%, 2A 52%, 2B 42% 수준으로 세계폐암학회폐암 7차 병기 자료 1A 73%, 1B 58%, 2A 46%, 2B 36%에 비해 각 병기 별로 6~14%p까지 월등히 높게 나왔다.

이 같은 결과가 나왔던 이유는 단순했다. 원칙을 지키는 수술이었다.

심 센터장은 “내가 피곤하다고 쉬운 방법으로 수술 방법을 바꾸거나 힘든 수술이라고 도망가지 않았다”며 “갈비뼈 사이로 혈관을 봐야 하는데 그 사이에 혹이 있으면 혈관이 안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을 누르지 않고 수술을 해내는 것이 원칙을 지키는 수술”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원칙을 지키며 집도한 수술이 무려 2200례에 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스태프들은 심 센터장의 수술을 보면 마치 한편의 예술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심 센터장은 수술할 때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수술을 빨리 끝낼 수 있어 수술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 등의 손상이 적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손상을 덜 받은 환자는 저항력이 덜 떨어져 회복속도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간호사의 실수에도 직접적으로 혼내는 일은 없다. 수술을 어시스트하는 스태프에 의해 영향을 안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내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성치 못하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심 센터장의 왼쪽 어깨는 연골이 찢어질 정도로 상했고 무릎도 성치 않다.

심 센터장은 이런 성치 않은 몸을 철저한 자기관리로 건강을 지키고 있다. 그는 매일 4시30분에 기상해 5시 50분에 분당에서 출발, 오전 7시부터 수술을 시작한다. 그는 보통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일찍 수술을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보다 많은 환자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한편 그는 의사를 꿈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단지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의사를 선택하기 보다는 자기의 적성에 맞을 때 의사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 센터장은 “아들이 의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말렸다”며 “의사는 자기 적성에 맞는 사람이 돼야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의사를 단순히 안정적인 직업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암센터 설립 이후 6년 동안 암센터를 맡고 있는 심 센터장의 목표는 암환자가 환자로 취급받지 않는 암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암환자라도 똑같은 삶을 살 권리가 있으며 병원이 이를 제공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암병원에 피아노를 가져다 놓고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환자, 의료진 누구나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있게 했다. 또 국내 암병원 최초로 암교육센터, 정신건강클리닉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환자들은 티타임도 갖고 스트레스 극복법도 배우는 등 암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명의가 말하는 ‘폐암’

-가래나 기침이 폐암 증상인가.

“가래나 기침이 있다고 모두 폐암은 아니다. 상기도나 기관지에 감염이 있으면 그러한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폐암은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위암을 조기발견 할 수 있는 이유는 고위험군에서 내시경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암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조기발견을 위해서는 어떻게 하라고 권장하는 방법이 없다. 다행히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폐암의 조기발견을 위해 저선량 CT를 찍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병원도 폐암 조기진단을 위해 저선량 CT를 적용한 결과, 폐암 환자 50%가 1기에서 발견되는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일반 CT와 달리 저선량 CT는 비용도 저렴하고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아 부작용 걱정도 적다. 오는 7월 암스테르담에 열리는 세계 폐암학회에서도 폐암 조기진단을 위한 저선량 CT의 사용에 관한 워크숍이 열릴 계획이다.”

-담배와 폐암의 관계는.

“직접적인 원인제공을 한다. 수술을 해야하는 환자가 흡연가라면 담배를 끊는 시점부터 2~3주 지난 다음 수술한다. 담배 피는 환자에게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 모든 암의 30%가 흡연과 관계있는데 폐암을 비롯한 후두암, 식도암은 더욱 관계가 깊다. 담배를 피면 뇌졸중, 심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유진 기자 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