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암 명의⑤] 가슴과 마음을 치료하는 ‘유방암 명의’

입력 2011-05-16 12:20

노동영 서울대암병원장(외과)

[쿠키 건강] 가슴이 여성성의 상징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가슴에 암이 생겨 가슴을 잃는다는 것은 여성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그런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방암환우회 비너스회와 함께 핑크리본 캠페인을 개최하면서 유방암환자들을 10년째 보듬어 안고 있는 서울대암병원장 노동영 교수를 26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최근 새로 문을 연 서울대암병원은 창경궁이 보이는 풍경으로 유명하다. 서울 시내 어느 스카이 라운지를 가도 이런 풍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노 교수의 방은 이런 풍경들을 뒤로 한 채 가장 답답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보살핀 환자들이 선물한 곰인형과 화장품들로 소녀방처럼 꾸며진 그의 집무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든다.

그가 비너스회를 이끌기 시작한 때는 2000년부터였다. 노 교수를 중심으로 환우들은 치료에 대한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다. 전국에 20여개 지부를 둔 비너스회는 이제 일본의 유방암 환우회와 재미교포들까지 아우르는 국제적인 조직이 됐다. 그들이 한국의 유방암 치료기술을 외국에 홍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노 교수는 자랑했다.

“유방암 환자는 장기 생존이 많기 때문에 삶의 질이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예민한 여성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비너스회를) 조직했습니다.”

실제 유방암 환자의 30%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과 상담도 도움이 되지만 환우회 활동을 통해 위로받는 것도 크다. 노 교수의 환우회에 대한 투자는 그야말로 아낌이 없다. 서툰 솜씨로 일 년에 한 번씩 환우회 쉼터에서 김장을 담그는 것은 물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환우회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에 직접 답을 다는 일이다.

10년째 매일 이 일을 하다보니 ‘리플 달기의 달인’이 됐다고 그는 자랑했다. 자신을 답글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면 하루도 쉴 틈이 없단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절대 대필은 없다’고 농담아닌 농담으로 애정을 드러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노 교수는 국가로부터 홍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수술 스케줄조차 소화하기 힘든 외과 의사가 이렇게 환자들에게 자상하기까지 하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잠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타고난 체력으로 새벽 5시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는 “주민등록상 내 나이는 쉰다섯 살이지만 내가 산 나이는 잠을 많이 안잔 덕에 예순다섯”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암병원장 보직을 맡고 있는 지금도 일주일에 15건 이상의 수술을 하고 있으며 90년도부터 계산할 때 수술 횟수만 1만례가 넘는다.



국내 이비인후과에서 큰 획을 그었던 노관택 전 서울대병원장의 아들인 노 교수는 아버지의 이비인후과 선택을 권유받았지만 외과를 택했다. 그는 “우리 때는 외과가 메이저였고 유행이었다. 예전부터 영화에 나오고 소설에 나오는 의사는 전부 외과 의사였다. 지도교수였던 김진복 선생님(서울대 외과 교수)처럼 멋진 외과 의사가 돼서 큰 칼을 휘두르고 싶었다”며 다소 소년 같은 치기어린 이유를 말했다.

그는 수술실력이 좋을 뿐만아니라 연구에 열심인 교수로도 유명하다. 연구인프라가 국내에서 가장 훌륭한 서울대의 환경탓이라고 그는 겸손은 떨었지만 그의 유방암 연구에 대한 욕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유방암 연구 국내 1인자인 그는 국제 학술지에 1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중에는 유리나라 여성에서 면역력 문제 때문에 저체중뿐만 아니라 과체중 여성도 유방암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조기유방암 환자에게 시행하는 감시 림프절 검사법이 전통적인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술에 비해 손색이 없는 안전한 수술법이라는 것을 대규모 환자 자료를 이용해 입증했다.

이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조기 유방암환자에게는 감시 림프절 검사법을 안심하고 권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노 교수는 2008년 11월 정부가 암 기초연구에 대한 임상 적용 분야 발전을 위해 만든 ‘이행연구센터’의 총책임자로 선임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한 그의 스케줄에 한 가지에 더해졌다. 올해 1월부터 서울대암병원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전문 암센터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10년 전부터 했지만 여러 가지 환경적인 문제 때문에 서울대가 후발주자가 됐다”며 “넓고 쾌적해진 공간에 좋아하는 환자들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환자 중심에 서서 진료하고 첨단 치료법을 개발하고 암병원으로 이끌어나가는 게 그의 포부다.

◇명의가 말하는 유방암

-유방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유방암은 대표적인 서구형 암이다. 체형과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유방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잘 먹는 것이 중요한가.

“먹는 게 중요하지만 ‘골든룰’은 없다.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실제로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은 특별히 없다. 다만 고지방 고칼로리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방암은 재발이 높다.

“유방암 재발이 높은 것은 다른 면에서 보면 생존률이 높다는 얘기다. 암의 특성상 다른 장기로 전이도 잘된다. 유방암은 1기 암이라도 4분의 1가량에서 재발된다. 하지만 1기에서 10년 생존률이 90% 넘는다. 따라서 유방암은 치료 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중요하다.”

-유방암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암도 이제는 의술의 발달로 치료가 잘되는 질환이므로 미리 절망할 필요가 없다. 희망을 잃지 말고 잘 관리하면 잘 살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본인과 가족의 노력이 함께 필요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유진 기자 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