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혁재 분당 함소아한의원 원장
[쿠키 건강칼럼] 2004년 3월 따뜻한 봄날 세상에 나온 우리 딸 주원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안 나오려고 버티는 반항을 잠깐 하기는 했지만 비교적 순탄하게 세상을 만났다. 3월에 태어나서 그랬을까? 첫돌 즈음 처음으로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개나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꼬~”라고 했다. 공원 산책을 하다가 그 말을 들은 아내와 나는 봄철에 태어난 아이가 첫돌에 들려준 선물에 고마워하던 일이 지금도 떠오른다.
몸도 비교적 건강했던 터라 두 돌이 되기 전까지는 큰 병치레 없이 비교적 잘 커주는 효도를 하면서 자랐는데, 그런 주원이도 우리 부부를 애태우는 일이 있었다. 바로 배변훈련이다. 2005년 9월말 아침에 주원이 엄마는 첫 배변훈련을 시작했다. 그 날 저녁 나는 배변훈련이 아직 쉽지 않겠다는 사정을 아내를 통해 들었다.
◇쌀밥, 고기, 과자에게만 몸 속 여행을 허락하다
주원이 엄마가 앞에서 좋아하는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지루하지 않도록 도와 줬는데, 10분 정도 까지는 잘 있더니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치듯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자꾸 몸을 비틀고 일어나려고 해서 엄마가 가만히 있으라고 ‘약간의 위협’을 한 것이 주원이에게는 무서웠던 모양이다. 우리 부부는 상의 끝에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이후 주원이의 배변훈련은 6개월이 지난 2006년 3월말 2돌이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가능하게 됐다.
자연과 소통하는 우리의 몸은 각자가 모두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머물던 많은 것들은 입이라는 입구를 통해 ‘작은 우주’에서 여행을 하다가 어떤 것들은 정착해 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여행의 마치면서 항문이라는 출구를 통해 처음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된다.
그런데 ‘몸 안으로의 여행’에 특정한 것들 혹은 자격미달인 것을 허가하게 되는 일도 있고, 여행을 마치고 다시 몸 밖 자연으로 돌아가는 일을 억지로 막거나 늦추면 변비가 생긴다. 주원이는 유독 흰 쌀밥과 고기의 여행만 허락하는 경향이 있었고, 엄마 몰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과자나 라면을 얻어내 순식간에 입 속으로 여행을 보내는 재주가 뛰어났다. 더구나 채소나 물 먹는 일은 겨우 시늉만 하다 보니 설사하는 일은 두 돌이 될 때까지 본적이 없다.
그럭저럭 배변훈련을 성공하기는 했지만, 안 좋은 식습관이 며칠간 지속되면 대변은 여지없이 2~3일에 한 번씩 보는 일이 한 달 정도 계속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36개월이 지나서 대변을 보는데 그 덩어리가 너무 커서 어떻게 저걸 다 담고 있을까 싶은 적도 많았다. 1년에 3~4달 정도는 변비와 함께 엄청난 대변 양 때문에 변기가 막혀 나는 ‘펑 뚫어 전문가’가 돼야 했다.
◇단체생활 후 심해진 변비, 한약과 침으로
주원이가 단체생활을 시작하고 나니 이전의 일은 애교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처음 유치원에 입학한 뒤로 3주가 지나지 않아 살이 2kg 가까이 빠지면서 핼쑥해지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감기는 잘 이겨내던 터라 별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먹기 싫은 채소가 가득한 급식 때문에 점심 식사의 반절은 안 먹다시피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소화기는 어른에 가깝게 완성되기 때문에 그 전에 어떻게든 올바른 식습관을 마련하는 것이 평생의 건강재산이 된다. 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그로부터 6개월간 한약도 먹이고, 침도 놓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습관’을 바뀌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약도 약간은 쓰게 만들어 먹게 했다. 아이들은 기운이 잘 돌기 때문에 가벼운 자극으로도 경락의 순조로운 흐름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프지 않은 침으로 1주에 2~3회 놓았다.
기분전환을 위해 1주일에 한 번은 여행을 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저녁에는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함께 하면서, 야식은 줄고 즐거움은 늘다 보니 잠도 더 잘 자기 시작했다. 유산균과 비타민도 꾸준히 먹였고 때로는 예쁜 인형 선물과 먹기 싫은 야채·물먹기를 교환하면서 거래를 하기도 했다. 지금 주원이는 8살 초등학생이 되었다. 다행히 요즘은 변비가 거의 없다. 엄마가 스트레칭을 하면 함께 따라 하고, 구름사다리 타기도 제법 잘하는 어린이로 자라고 있다.
◇“묽은 똥아 고맙다, 주원아 장하다”
얼마 전 배를 타고 15분 정도 찬바람을 쐰 적이 있다. 날이 제법 추워 어른인 나도 배가 슬쩍 아파왔다. 그런데 주원이가 그만 배 안에서 대변을 지린 것이다. 주원이 엄마는 화장실로 데려가 몸을 씻기고, 나는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바지와 속옷을 구해 왔다. 며칠 후 외갓집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사촌들이 모인 자리에서 주원이 엄마가 그날 일을 얘기했다. 주원이는 엄마를 한동안 흘겨보더니, 모든 걸 체념한 듯 한마디를 토해냈다.
“방귀만 뀌려는데 똥이 따라 나오는 걸 제가 무슨 수로 막겠어요!”
순간 온 가족은 웃음바다가 됐고, 어른들이 모두 박수를 치면서 “그래, 네 말이 정답이다”하면서 주원이의 창피한 기억을 덮어주었다. 나도 함께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태어나서 아마 처음으로 묽은 변을 본 주원이의 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마음속으로 했다.
<이혁재 분당 함소아한의원 원장은 아빠를 쏙 빼 닮은 딸 주원(8)이를 두고 있으며 건강한 삶을 위해서 ‘밤낮과 계절의 변화에 생체리듬이 잘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육아일기] 채소, 물 싫어하는 주원이의 변비 탈출기
입력 2011-04-18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