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임경록 강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밥 안 먹는 아이, 아빠 탓?
[쿠키 건강칼럼] 아들 현승이는 어릴 적 내 모습과 많이 닮았다. 특히 입맛이 그렇다. 조금 입맛에 맞는 음식이 있을 때는 정신없이 먹다가 금방 배가 부르다고 도망가는 아들의 모습은 꼭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 똑같아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키와 몸무게는 또래와 비슷하지만 먹는 것은 참 싫어라 한다. 모유와 분유를 먹을 때부터 입이 짧더니, 이유식을 할 때도 기분 좋을 때는 잘 받아먹다가 금새 입맛을 잃어 우리 부부의 속을 태우기도 했다.
◇밥 안 먹는 아이, 아빠 탓?
유치원을 다니는 지금도 여전히 먹는 것에 대한 욕심은 그리 많지 않다. 현승이는 진료실에서 흔히 보는 식욕부진의 전형적인 증상을 다 가지고 있다. 식사 시간에 한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먹고, 유치원에선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먹지만 집에서는 엄마, 아빠가 먹여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질긴 음식은 먹지 않고 부드러운 음식이나 마시는 것으로만 배를 채우려고도 한다. 뱃골도 작은 편이어서 금방 포만감을 느끼는 편이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무척 안 먹는 아이였고 사춘기까지는 상당히 마른 편이었다. 지금은 체중이 쉽게 늘어나는 체질로 바뀌어 오히려 운동을 통해 체중을 조절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의료 추세에 따르면 어릴 때 잘 안 먹고 마른 아이가 성인이 돼 더 쉽게 비만이 된다고 보고 있다.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은 기초대사량이 또래보다 떨어져,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 정상적인 영양을 섭취할 경우 잉여 영양분을 더 많이 만들게 된다. 따라서 지금 잘 안 먹는 아이들은 성장지연과 비만을 동시에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밥 안 먹는 아이, 예민해질 수 있어
뱃골이 작은 아이는 쉽게 포만감을 느끼고, 비위장이 약한 아이는 금새 음식에 대한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고 잘 체하기도 한다.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키와 체중이 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잘 지치고 신경질적인 아이가 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소아발달에서는 만 2세까진 구강기형 인간으로 먹는 것에서 만족감과 행복감 느낀다고 본다. 때문에 이때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은 만족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 예민한 아이들이 많다.
◇예쁜 그릇과 별식, 식욕부진 해결의 첫 걸음
아이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엄마, 아빠 입장에서는 점점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하지만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럴 때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활용해 보자. 현승이가 한창 동물을 좋아할 때가 있었다. 동물 모양의 틀을 이용해 밥을 찍어주면 아이 기분이 좋아지면서 곧잘 먹었다. 이렇게 한 수저라도 먹으면 성공이다. 볶음밥, 해산물 스파게티, 닭죽 등 채소와 육류, 탄수화물을 골고루 섞어 별식을 만들어 줘도 효과가 좋았다. 이때 예쁜 그릇도 필요하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게 아이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여러 번 실감했다. 현승이가 아빠의 정성을 알아주는지 내가 만든 밥은 잘 먹어주니 고맙고 뿌듯했다.
아이를 요리에 참여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현승이는 브로콜리를 잘 먹는데, 자기 손으로 브로콜리를 직접 씻어버릇했기 때문이다. 현승이가 오물조물 씻은 브로콜리를 내가 데쳐주면 찬물에 들어 있는 초록빛 브로콜리를 보면서 “아빠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자기가 직접 만지고 맛을 봐야 좋은 기억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음식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우리집에서는 채소와 과일 씻기, 국수 담기, 음식 나르기는 아들의 몫이다. 만약 편식, 식욕부진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음식과 식사가 놀이가 되도록 해보자.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가 밖에서 뛰어 놀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도 좋다. 활동량이 많아야 입맛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허기를 느끼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육체적인 활동이다. 운동은 근골격을 튼튼하게도 해주지만 기의 흐름도 도와준다. 기가 잘 돌면 사라졌던 식욕이나 소화력이 돌아올 수 있으니 꼭 해보길 바란다. 이때 엄마, 아빠가 함께 뛰면 더 좋다.
<임경록 원장은 강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으로 아이가 저절로 크는 것 같지만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육아와 의학은 그 과정 속에 겪는 역경을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다>
[육아일기] 잘 안 먹는 아들, 밥 먹이기 투쟁기
입력 2011-04-11 1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