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지난 30년이 연구자였다면 앞으로는 의사 본연의 일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국내 갑상선암 분야 1인자로 평가받고 있는 조보연 교수(내분비내과)가 서울대병원을 떠나 중앙대병원 갑상선센터장에 취임하며 밝힌 말이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조 교수는 하루 4시간 동안 200여명의 환자를 볼 정도로 밀려드는 환자에 치여 기계처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듯 많은 환자를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명의’로 불리게 됐지만 환자들이 원하는 것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때때로 권위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자신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조 교수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우리나라의 갑상선 분야를 선도하는 연구자로서의 역할에 더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며 “이곳(중앙대병원)으로 온 뒤 무엇보다 환자들을 환자답게 대하며 활짝 웃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된 게 기쁘다”고 말했다.
그가 30년을 머물렀던 서울대병원을 떠나 중앙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데는 시스템을 만들어 팀을 마음대로 꾸려보라는 김성덕 의료원장의 설득과 제대로 된 의사가 돼보자는 개인적인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서울대의대 동기인 김 의료원장은 지난 2009년 서울대에서 중앙대로 옮기며 조 교수 영입에 착수했다. 늘어나는 갑상선 질환을 서울대병원이 모두 소화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과 이를 중앙대병원이 특성화 분야로 삼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김 의료원장에 따르면 고심하던 조 교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 건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이었다.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학교를 인수했고,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박 회장은 조 교수의 서울대의대 선배다.
조 교수를 선장으로 영입한 중앙대병원은 2008년 문을 연 ‘갑상선종양클리닉’을 확대 개편해 ‘갑상선센터’로 재출범시켰다. 내분비외과, 외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등 실력 있는 의료진을 신규 채용해 보다 경쟁력 있는 협진시스템을 완비했다. 무엇보다 모든 의사들이 진료과와 상관없이 갑상선질환을 중심으로 뜻을 한 데 모았다는 점은 중앙대병원 갑상선센터만의 자랑거리다.
조 교수는 “우리 의료현실에선 ‘진료과’ 구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갑상선질환을 보는 의사란 사실”이라며 “각 진료과 인력이 함께 참여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자칫 재벌이 운영하는 병원이라서 경제논리에만 집착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운영원칙을 정했다. 그의 원칙은 ‘암을 찾기 위한 검사를 일부러 하지는 말자, 다만 우연히 발견된 사람은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자’는 것이다. 종양의 크기, 악성이냐 양성이냐의 구분 등에 따른 수술 결정 지침도 자세히 세워 놨다.
조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외과, 영상의학과 등은 세계 톱 수준이어서 진료의 질 차이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갑상선암은 재발의 위험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국내 갑상선학의 개척자인 이문호·고창순 박사의 뒤를 계승 발전시킨 갑상선 질환의 최고 명의로 지금까지 300여 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했다. 특히 약 15여 년 전 서양인과는 달리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우 갑상선 기능을 억제하는 차단형 항체가 많다는 사실을 유럽내분비학회에 발표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명의가 말하는 갑상선암
-여성이 주로 걸리는 암이라는데.
“갑상선암은 국내 여성암 1위이자,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암으로 주로 여성에서 많이 발병하지만 최근에는 건강검진 활성화와 진단기술의 발달로 노년층과 남성 환자도 늘고 있다.”
-거의 완치되는 암으로 알고 있다.
“갑상선암에는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암 등 4가지 종류가 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갑상선암의 95%는 유두암이다. 유두암은 치료하면 98%가 완치될 정도로 예후가 좋은 암이다. 하지만 미분화암의 경우는 모든 암종을 통틀어 예후가 가장 나쁜 암이다.”
-잦은 초음파 검사 때문에 갑상선암 발견이 많아진 것인가.
“갑상선암의 진단에 관한 논란이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 갑상선 초음파를 일상적인 검사로 활용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겉으로 봐서 이상이 없는 경우에도 30~50%에서 갑상선의 결절이 발견된다. 이러한 결절 중에 5%가 암이다.
갑상선 초음파 결과 결절이 발견됐을 때 그 혹이 1cm 이상이면 조직검사를 하고 5mm 이상 1cm 이하이면 초음파상 암이 의심될 때 조직검사를 통해 암인지 확인한다. 결절이 5mm 이하일 때는 조직검사를 해도 정확도가 떨어지고 이것이 설사 암이라고 해도 성장, 전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경과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수술 방법은.
“암이 발견됐을 경우에는 절개, 내시경, 다빈치 등의 방법으로 수술한다.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서 50%는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고 있다. 수술 당시에 암의 크기가 크거나 림프절 전이, 주위 조직 침범이 있으면 재발가능성이 높다.
연령별로 보면 나이가 아주 어리거나 45세 이후일 경우에 재발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암이 1cm 이하여도 3분의 1정도에서 전이 침범이 있을 수 있으므로 크기가 작다고 쉽게 넘겨서는 안 된다. 또 갑상선암은 다른 암이 5년 재발이 완치라고 보는 것과 달리 10~20년 이후에도 재발하므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유진 기자 uletmesmil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