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외할아버지, 엄마에게 물려받은 준태의 비염

입력 2011-04-04 12:16

글·최우진 구미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쿠키 건강칼럼] 둘째 준태는 돌까지는 통통한 ‘도야지’처럼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돌이 지나고 젖살이 빠지더니 두 돌이 될 무렵, 찬바람을 맞고 감기에 걸렸다. 감기가 오래가는가 싶었는데, 평소 잘 때 새근거리며 듣기 좋았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코를 심하게 골았다. 어느 날부터는 입 속에서 쾌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코에서 냄새가? 앗, 비염이라니”

잘못 맡은 건 아닐까 하고 다시 맡아봤지만 준태 입에서 나는 냄새가 맞았다. 아들이 그 지경이 되도록 전혀 신경 못쓰고 있다가 입 속에서 나는 지독한 냄새를 맡고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아이가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면서 자꾸 침이 말라 입 속 청소 기능이 약화되면서 냄새가 났던 것이다. 여기에 코가래(코의 분비물이 목으로 넘어가는 것)가 고여 있으니 고약한 썩은 내가 날 수 밖에…. 다른 아이들 돌보느라 내 자식에게 소홀했다니 한숨부터 나왔다.

소아 침과 향기탕약으로 치료를 시작하자 그동안 고생하던 준태의 비염 증상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한약을 먹기 시작한지 겨우 2, 3일 만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내가 한의사가 되고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 중 하나였다.

◇“물려받은 비염, 아빠가 더 신경 써 줄게”

준태는 여러 모로 외가 쪽을 많이 닮았다. 건강도 마찬가지인데 준태 외할아버지, 즉 장인어른은 청년 시절부터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으로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천식 증상이 있고 비염은 만성이 돼 코 안이 부어 있고 콧속 깊숙한 곳에 물혹도 여러 개 생겼을 정도다. 준태 엄마도 코가 예민해서 쉽게 붓고 염증이 잘 생기는 편이다.

준태의 코가 안 좋은 것은 사실 부모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비염은 종류도 많고 이름도 많은데 치료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가족력이다. 타고난 코의 구조와 점막의 질이 비염의 예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누구 탓이든 준태도 코가 약해서 감기에 걸리면 꼭 코감기에 걸리고 코를 고는 경우가 많다. 아주 어릴 때부터 관리를 해줘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환절기에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금세 재발한다. 코가 막히고 코를 비비고, 잘 때 코를 골거나 입으로 숨을 쉬느라 깊은 잠을 못 자고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용담사간탕, 형개연교탕 같이 속열을 풀어주는 한약을 먹이고 인당, 영향, 합곡 같은 자리에 침을 놔준다. 인당은 미간의 정중으로 콧속 열을 풀어주며, 영향은 콧구멍 양 옆 혈자리로 감기 기운을 몰아내고 콧구멍을 열어주는 작용을 한다. 합곡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혈자리로 폐기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이런 혈자리는 약간 세게 문지르며 눌러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기 전에는 청비고와 청비수라는 한방 외용제로 코 안을 마사지해주기도 한다.

그래도 기쁜 것은 작년보다 훨씬 증상이 덜하고 치료기간이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엄마가 약을 안 챙겨줘도 자기가 약을 잘 챙겨먹고 한약도 맛있다고 해주니 아빠로서 고마울 뿐이다. 틈만 나면 고장 나는 네 코! 준태야, 네 코는 아빠가 책임질게!

<글을 쓴 최우진 원장은 구미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으로 소연이(10세), 준태(9세), 태희(7세) 세 아이의 아빠다. 한의원에 오는 아이 모두가 내 아이 같다는 생각으로 진료에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