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지난 9일 국회에서 윤석용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한의사협회가 후원한 ‘건강보험! 한방 보장성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좌장은 조재국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위원이 맡았고 김진현 서울대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으며 패널로는 하일호 대한노인회 정책이사, 조경애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 김경호 대한한의사협회 보험이사, 정석희 한의과대학 교수, 이스란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 황운하 중앙일보 기자가 참석했다.
토론회의 주된 내용은 현재 한방의료기관에 지급되는 요양급여비용, 즉 한방이 전체 건강보험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에 불과해 너무 낮으니 한방의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토론회의 전체적인 기조 역시 한방의 보장성을 강화함으로써 양방과의 경쟁이 가능하게 만들고 대체방안을 활성화해 양한방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총액제 계약 도입, 현재 한의계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의료기기의 공유, 진료를 하고 받는 수가체계의 개선 등 여러 방안이 거론됐다.
김경호 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한방건강보험 급여확대와 보장성 강화의 구체적 내용으로 ▲보험급여 한약제제 개선 및 확대 ▲한방물리요법 보험급여 확대 ▲약침술의 건강보험 급여 실시 ▲한약(첩약) 건강보험 급여 실시 ▲각종 시술에 따른 치료재료대(침, 뜸, 부항 등) 신설 등을 들었고 이를 위해 한방건강보험 수가구조와 심사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2시간 정도 진행된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맛있는 과자를 먹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듯한 인상을 받은 것은 기자뿐이었을까.
한방의 보장성 강화, 좋은 얘기다. 국민 입장에서도 양방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에서 벗어나 한방치료까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다면 치료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진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환자 입장에서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1970년대 말부터 덩샤오핑이 취한 중국의 경제정책)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병만 나으면 되니까.
하지만 한의계는 이런 토론회를 개최하기 전에 내부에서 해야 할 일을 먼저 했어야 했다. 바로 급여 확대를 위한 기초연구와 과학적 근거 마련이다. 이는 주제를 발표한 김진현 교수는 물론 보장성 확대에 동의한 시민단체 조경애 대표, 답변을 준비한 복지부 이스란 과장까지 일관성 있게 지적한 점이다.
우선 한의계에서 한방의료서비스의 의학적 타당성과 효과성을 입증하는 과학적인 근거와 표준진료지침 등을 마련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의원을 찾아가도 각기 다른 진료법이나 치료가 아닌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먼저라는 말이다.
건강보험에서 요양급여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급여대상 평가가 먼저다. 기존 행위와 비교할 때 임상적 유성이 동등하거나 개선됐는데 시술비용에서는 추가부담이 없는 행위인가, 대체해 시술할 치료법이 전혀 없는 행위인가,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술행위인가 등을 평가해야만 급여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데 과연 한의계가 이런 준비를 마쳤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한의계에서 먼저 한방치료에 대한 비용효과성을 입증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김진현 교수가 말한 대로 ‘어쩌다 논문 한 번 나오는 지금 상태로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을 다시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한방의 보장성 확대는 좌장 조재국 교수도 지적한 바와 같이 한의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만의 ‘비방(秘方)’이나 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단계별로 과학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야만 가능하다. 그는 사견을 전제로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사상의학이 존재하는 한 한의학의 과학화는 요원하다고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한방 보장성을 확대할 경우 소요되는 재정문제다.
지난해 한의사협회에서 소요재정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올해 한약제제 급여확대에 200억원, 치료용 첩약 조제시 진찰료와 검사료 인정에 60억원, 치료재료대만 26억원이 필요하다. 한의사협회가 요구하는 보장성 강화 시 올 한해만도 286억원이 추가 지급돼야 하는 것이다.
이어 한의사협회의 주장대로 물리요법 확대, 추나요법·약침시술을 추가하고 첩약까지 보험을 적용하게 되면 2015년까지 5036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고갈로 시간이 지날수록 파탄에 이르는 보험재정인데 과연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전통의학인 한의학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흔히 말하는 만성질환은 물론 예컨대 염좌(삠) 같은 급성질환에도 분명히 효과를 보인다. 또 우리 전통의학을 육성하고 발전시켜 세계화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한의계가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이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한의사 개개인이 나만의 비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사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 한방의 표준화와 과학화에 보다 집중해야만 비로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창연 의약전문기자 chyjo@kmib.co.kr
[조창연의 건강세상 돋보기] 답답한 한의사협회, 보장성 강화하라면서 근거는?
입력 2011-03-11 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