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생후 6개월 이전 조기 발견이 관건”

입력 2011-03-11 07:24
국내 뇌성마비 환아 1000명중 3명꼴… 정상아 보다 발달 늦다면 정밀검진 필요

[쿠키 건강] #6살 아들을 둔 오모(35)씨는 최근 아들이 뇌성마비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자주 넘어져 덤벙거리는 성격인 줄만 알았던 오씨는 아들을 데리고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정밀검사 결과 증세가 약한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은 것. 아들은 오른쪽 발목의 관절이 굳어져 장애물을 순간적으로 피하지 못해 그동안 자주 넘어졌던 것이다.

뇌성마비는 아기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나 출산과정에서 감염이나 뇌 손상으로 인해 뇌에 산소가 부족해 생기는 질환이다. 즉 임신 중 자궁에 병균이 침입해 생기는 태아감염이나 조산 혹은 분만 중 뇌에 피가 덜 가서 생기는 허혈성뇌증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한 대학병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뇌성마비 환아는 1000명 중 3명꼴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돌 전후해서 증세 뚜렷하게 나타나

증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뇌성마비는 대개 돌을 전후해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기저귀를 갈 때 ▲다리를 벌리기 힘들거나 ▲다리가 축 쳐지는지 ▲아이가 6개월이 지나도 손을 펴지 않고 주먹을 쥐고 있거나 ▲하지가 뻣뻣하게 굳어있고 ▲발끝이 가위모양으로 겹쳐지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 ▲아기가 길 때 팔과 다리가 동시에 움직이거나(토끼가 뛰는 모양) ▲바로 세웠을 때 발뒤꿈치를 들고 서는 등 어린이의 운동발달이 정상 어린이의 50% 수준보다 3개월 정도 늦다면 뇌성마비를 의심하고 정밀검진을 받아 볼 필요가 있다.

연세대학교 원주기독병원 정현호 교수는 “뇌성마비는 6개월 이전에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정확한 검사를 위해 출산 전후의 병력과 어린이가 뇌막염이나 호흡곤란, 황달 등을 겪었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뇌성마비 진단을 위해서는 병력 청취와 근긴장도, 원시반사, 자발운동, 자세반사 등의 필수검사와 뇌전산화 단층촬영, 뇌자기공명영상, 뇌파 검사 등을 하게 된다.

◇환아 스스로 적극적인 재활훈련 하도록 격려 필요

내 아이가 뇌성마비 진단을 받으면 부모는 충격을 받고 좌절하기 쉽다. 뇌성마비에 걸리면 많은 이들이 정신장애를 동반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뇌성마비 환자에게서 정신장애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정신장애는 뇌 손상이 심각한 환자에게 드물게 나타나며 사지 경직 또한 종류에 따라 경직성, 혼합성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뇌성마비로 진단을 받으면 병원에서는 환자의 현재 기능적 수준을 파악하고 예후, 치료 방향, 방법 등을 정확히 결정해 치료에 임하게 된다.

뇌성마비 치료는 약물치료와 재활훈련을 위주로 하는데, 최근에는 증세가 심한 환자들을 위해 소량의 바클로펜을 규칙적으로 주입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물주입기를 이식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질환을 조기 발견하고 근육 강직을 막아주는 약물과 꾸준한 재활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으면 걷거나 학습을 하는데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실제 지난해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에서 수영 5관왕을 달성한 김지은 선수도 뇌성마비를 극복하며 승리를 일궈냈다.

뇌성마비 환자의 재활치료는 환아에게 필요한 새 동작을 습득하게 하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합병증 등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된다. 뇌성마비 환아에게 뒤집기, 배밀이, 앉기, 기기, 걷기, 무릎걷기 등의 동작을 하도록 촉진해 설 수 있는 능력을 도와주고, 일부러 넘어지게 하는 듯한 자극을 줘 어린이 스스로 다치지 않도록 손발을 사용하는 방법 등을 습득하게 한다. 이때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고 환아의 부모도 치료의 원칙과 방법을 자세히 알아둬야 한다. 어린이가 점차 커가게 되면 그에 맞춰 스스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재활훈련을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장애아라고 생각해 집에만 두거나 과도한 보살핌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격려해주고 공간적, 입체적 자극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의사소통과 정서 발달에 좋다.

요즘은 뇌성마비 환자의 경직이나 경련을 막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경우도 많다. 보톡스는 굳은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주는데 도움이 되고 효과는 3~6개월 정도다. 그러나 경직된 근육을 가려서 주사하는 것이 중요하고, 반복적으로 주사를 맞으면 내성이 생겨 약효가 없어질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굳은 팔다리 때문에 잠 못자고 통증 심하면 약물주입술 고려해 볼 만

뇌성마비 환자는 관절의 심한 변형과 강직, 꼬임, 경련 등으로 통증이 심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들은 대개 증상이 어느 정도 진행돼 약물이나 재활치료로는 한계가 있어 별다른 치료방법 없이 통증을 참으며 고통을 견딘다.

이처럼 팔, 다리의 경직증상이 심한 뇌성마비 환자들에게는‘척수강내 약물주입술’이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주목 받고 있다. 이 치료법은 복부에 바클로펜(항경직성 약물)이라는 약물을 담은 펌프를 이식한 후, 가느다란 관을 척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인 척수강내에 삽입해 약물이 일정하게 주입되도록 하는 시술법이다. 약물이 척수강내로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경구용 약물의 약 100분의 1에 해당하는 극소량만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키며 통증을 줄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어서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은 편이고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용량의 약물이 주입되는 것이 장점이다.

정 교수는 “재활치료나 약물 치료로 효과를 보기 힘든 뇌성마비나 뇌출혈 등의 환자들에게 적합한 수술법이며, 특히 중증의 경직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척수강내 약물 주입술’은 1991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은 수술법으로 지금까지는 미국 등 의료선진국에서 많이 시술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보험이 적용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많은 상태. 이 시술법은 현재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일부 대형병원에서 뇌성마비 또는 중증 경직 환자에게 15례 이상 시술됐고, 최근 원주기독병원에서도 지난 2월16일 경직 증상을 동반한 근육긴장이상증 환자의 첫 시술에 성공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