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신경자극기 복부·쇄골 밑에 이식해 통증신호 차단 원리
[쿠키 건강] #지난해 한 척추전문 병원에서 허리수술을 받은 A(56)씨는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 허리수술을 받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재수술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없던 종류의 통증까지 생겼다. 담당의사는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정밀 검사에서도 통증을 일으킬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인 모를 통증이 계속돼 물리치료나 뼈 주사를 비롯해 약물치료만 십여 가지 이상 시도해 봤지만 어느 것 하나 A씨를 고통에서 떼어놓지는 못했다.
우리 주변에는 A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여러 가지 약물과 물리치료, 통증치료 등으로 일부 도움을 받더라도 효과는 그 때뿐, 다시 고통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공포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통증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치료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까지 떠맡아야 하는 환자들은 이중고에 시달린다.
최근 이와 같은 ‘수술 후 통증 증후군’을 포함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 CRPS), 말초신경염(neuropathy) 등의 통증완화에 효과적인 치료법인 ‘척수신경자극술’이 도입돼 ‘지긋지긋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통증 신호를 다른 신호로 바꿔 아픔 줄여
통증은 인체가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으면 감각신경 세포들이 그 신호를 척수를 통해 뇌로 전달해 나타나는 일종의 신경계 신호다. 따라서 이런 통증 신호를 다른 자극 신호로 바꾸면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배가 아프면 무의식적으로 배를 문지르고 이로 인해 통증이 감소되는 것을 느낀다. 어떤 부위에 통증이 있을 때 본능적으로 아픈 부위를 손으로 만져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척수신경자극술(Spinal cord stimulation, SCS)은 이와 같은 원리로 통증을 담당하고 있는 신경다발 위에 미세 전극을 얹어 통증신호를 차단하는 시술법이다. 즉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으로 하여금 아픔을 느끼게 하는 통증신호 대신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전달하게 해 통증신호가 뇌로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부산 메리놀 병원 신경외과 박재성 과장은 “척수신경자극술은 작은 자극발생기(가로 5cm, 세로 5.5cm, 폭 1cm)를 복부 또는 쇄골 아래에 삽입해 척수에 미세한 전기자극을 전달하고, 환자 개인의 증상에 맞는 전기 자극을 설정해 통증을 완화하는 치료법이다”며 “자극발생기의 영구 삽입 전 테스트 자극을 실시함으로써 통증 완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효과 장기적이고, 원치 않으면 쉽게 제거
이 수술은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신경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 이전의 수술 부위를 재수술하는 위험을 겪지 않아도 되며, 효과가 장기적으로 지속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극발생기를 2~4년 마다 교체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기기를 교체하지 않고도 외부로부터 충전을 할 수 있는 자극발생기가 개발돼 편의성이 크게 향상됐다. 기기를 삽입한 환자는 작은 환자용 프로그래머를 이용해 전기자극의 세기를 간단히 조절할 수 있어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른 맞춤형 통증 조절도 할 수 있다. 환자가 원할 땐 언제든지 척수신경자극기 시스템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그러나 모든 환자들이 이 치료법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술이 도움이 될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를 잘 구별할 수 있는 선별검사를 받아야 하고, 수술 후에는 자기공명영상(MRI)을 찍는 데 제한이 따르므로 수술 전에 전문의와 충분한 토의를 거쳐야 한다.
이 수술은 현재 국내에서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통증증후군 환자들에게 활발히 시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적용범위도 확대돼 그 동안 치료법이 없어 만성 통증으로 고통 받던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
‘엄마 손은 약손’ 원리 이용해 만성통증 없앤다
입력 2011-03-03 1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