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한약 먹이기 전쟁,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입력 2011-02-28 12:24

글·이진혁 대표원장 울산 성남 함소아한의원

[쿠키 건강칼럼] 육아 칼럼을 쓴다고 고민하는 사이 저만치 둘째 혜원이가 걸어온다. 돌이 갓 지났는데 첫째랑 하는 행동이 또 다르다.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하는 편이고 성격도 딴 판, 이런 재미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이럴 때 보면 철부지 아빠다.

이 글을 보는 많은 부모님이 공감하겠지만 3살 이상의 아이들에게 한약을 먹이는 것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고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미운 3살’ 이라고 했을까?

◇어라? 맥 짚어 보니 곧 감기 올 것 같네?

지난 12월 말, 잠자고 있는 첫째 서현이의 맥을 잡고서 왠지 불안감이 밀려 왔다. 평상시와 달리 호흡기 맥이 약했다. 호흡기맥인 폐맥이 가라앉아있지 않고 떠 있으며 힘이 있으면 정상맥이라고 본다. 그 맥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에 따라 아이들 감기의 증상 및 앓는 정도가 다르다.

“요즘 첫째를 데리고 많이 돌아다니긴 했어. 기력도 좀 떨어진 것 같고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감기 좀 하겠네. 호흡기 면역을 돕는 한약을 먹여서 면역력 좀 높여야겠어!”

아빠의 이름으로 두 손 불끈 쥐고 아이에게 한약을 달여 주었다. 그런데 처방은 둘째치고 약이 도착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졸졸 따라다니면서 먹이지 않으면 반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첫째 서현이는 처음 한약을 먹었을 때, 한약을 매우 잘 먹어 우리 부부는 매우 당황했다. 심지어 어른들이 먹는 약도 곧잘 먹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3살이 넘어가면서 마음에 안 내키면 금세 ‘안 먹어’라는 말이 입에 붙어 버렸다. 그나마 먹이려면 내가 “아빠 한 입, 서현이 한 입”해야 겨우 먹으니 난감했다.

이제 제법 발도 빨라져 따라다니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어휴, 그냥 감기 앓게 할까? 아이가 하도 안 먹으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부모 마음은 별 수 없다. 아이가 아프면 맘이 편치 않기에 이리 저리 방법을 찾아 보고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들 경쟁 심리 이용해 한약 먹이기 미션 성공

내가 찾은 첫 번째 방법은 ‘증류한약’이다. 물과 비슷한 색깔이라 약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약간 달달한 맛이 있어서 아이도 잘 받아 먹는다. 둘째 혜원이는 증류한약을 주면 아예 코를 박고 먹는다. 특히 조금 많이 걸어 다닌 날이라면 두 봉지도 거뜬하다. 만약 일반 탕약을 죽어라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라면 증류한약을 먹여보는 것도 답이 될 것 같다.

두 번째 방법은 형제의 경쟁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경쟁을 붙여 놓으면 안 먹던 밥도 잘 먹고, 평소 절대 가지고 놀지 않는 것도 찾는 법이다. 첫째 서현이가 먹기 싫어하는 약을 동생 혜원이에게 주었을 때 잘 먹으면 멀뚱 쳐다 보다가 한마디 한다. “나도!” 이럴 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실제 진료했을 때 약을 잘 못 먹는 아이들에게 “어린이 집에 보내서 먹여주세요”라고 하면 대부분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한 끝에 서현이에게 약을 잘 먹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침을 조금씩 해서 증류한약에 감기 한방 과립제를 섞어 먹이기도 했다. 그 후 기침도 줄고 동생과 잘 놀았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번엔 이 방법이 통했지만 아이가 크면서 눈치가 빤해지면 언젠간 이것도 통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르니 그냥 아이 기분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아이의 한약 복용은 한의사에게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지금 서현이는 혜원이와 책을 보고 있다. 말은 곧잘 하지만 한글도 잘 모르는 아이가 동생에게 책을 읽어준답시고 뭐라 뭐라고 한다. 기특하다. 무슨 책을 보고 있나 살펴봤더니 책 제목이 ‘같이 나누는 게 행복해요’다. 후후, 서현이는 동생에게 자기 장난감은 잘 주지 않는다. 역시 애는 애다. 귀여운 내 보물들.

<글을 쓴 이진혁 원장은 울산성남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으로 서현(31개월)이와 혜원이(13개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젊은 아빠다.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며 진료에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