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정신 서대문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쿠키 건강칼럼] 한의사인 직업 특성상 늘 걱정스러운 엄마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찬바람만 불면 코를 훌쩍이는 아이, 아토피 때문에 온몸을 긁적여서 딱지가 앉은 아이, 한번 열이 오르면 40도 가까이 가는 아이 등 어디든 ‘문제(?) 있다’ 싶은 아이들을 데려오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자면, 나 또한 남자 아이 둘을 둔 엄마이기에 “맞아 맞아” “그럴 때 정말 죽겠죠?”하면서 수다를 떨게 된다. 이렇게 한창 얘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에이~’ 하는 표정으로 엄마들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원장님은 아이 잘 키우시잖아요. 전문가시잖아요?”
◇병진아, 밥 먹기가 죽기보다 싫더냐?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 또한 밥 먹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울고 싶을 정도로 고생한 엄마였다. ‘밥 안 먹는 아이’는 엄마들의 고민 중에서도 가장 애간장을 태우는 것 같다. 아이가 무병무탈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자, 하루 세 번 아이와 전쟁을 치르게 하는 원인이니 엄마의 속이 새까맣게 탈 수 밖에 없다.
우리 첫째 병진이는 밥 먹기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아이였다. 첫째가 먹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은 백일도 되기 전이다. 튜브수유 등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보충수유도 시도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 멀쩡한 아이의 코에다 L-tube를 꽂아서 영양분을 넣어 주는 상상을 할 정도로 답답한 심정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한창 클 때라서 대충 먹어도 잘만 큰다는데, 우리 아이는 잠깐 굶겨 봐도 계속 안 먹으려들고 힘겹게 먹여도 토하기 일쑤라 체중이 도통 늘지 않았다.
◇엄마의 과한 욕심, 결과는?
밥 먹는데 기본으로 1시간 이상이 걸리니 아이와 지내는 시간의 대부분은 먹는 것과 씨름하는데 보냈다. 남자아이다보니 나중에 키가 작아서 콤플렉스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 후 급성장기인 2~3살 전에는 어떻게든 성장을 따라잡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나는 아이들을 진료하는 한의사 아닌가? 내 아이만은 남부끄럽지 않을 만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결국엔 과한 욕심을 부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이나 육아서에서도 밥 먹는 것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이가 밥 먹을 때마다 전쟁처럼 무던히 다그치고, 소리치면서 몇 숟갈 먹이고, 잠시 휴전 상태로 바뀌는 날들이 계속됐다. 서로 기운만 빼고 식사 때면 아이가 슬슬 눈치를 보는 날이 계속 됐다. 그래도 아이의 체중은 늘지 않았고 서로 마음만 상했다.
◇소화기는 비위, 즐거운 식사시간 중요해
나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생각했다. 한의학에서는 소화기를 ‘비위’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상대의 기분을 맞추어줄 때 ‘비위 맞춘다’고 말할 만큼 비위는 감정에 민감한 장부다. 그런데 밥 먹을 때마다 엄마가 다그치고 화를 냈으니 그 얼굴을 보고 밥을 먹는 아이가 뭐가 좋다고 얼씨구나 입맛이 돌았을까싶다. 오히려 아이는 ‘밥상만 받으면 엄마가 화를 내는 구나’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밥상 전쟁을 2~3년간 하고 뭔가를 깨달은 다음에는 다른 타협점을 찾았다. 아이가 당장 얼마나 먹는지를 체크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겁게 보내려고 했다. 목표량을 줄이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차려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식사 거부와 잦은 구토, 배앓이 증상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소화기를 편안하게 해주는 한약 치료도 병행했다. 아직도 또래보다는 좀 적게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힘겹게 찌워놓은 체중이 잔병치레 좀 했다고 쑥 빠진다던가 하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아이의 타고난 뱃골, 인정하고 응원해주기
아이들은 체질을 막론하고 아직 소화기가 약해 체기가 쉽게 생기고 식욕도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이의 뱃골, 즉 타고난 밥그릇은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식습관도 정말로 다양하다. 우유만 먹고 밥은 거부하는 아이, 새로운 음식은 무엇이든 싫다는 아이, 반찬은 안 먹고 밥만 고집하는 아이, 낮에는 안 먹고 자기 전부터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아이까지…. 그러나 점차 커가면서 이런 문제들은 없어질 가능성이 많다.
지금부터는 아이의 작은 뱃골,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이해해주면서 그에 맞는 방식을 함께 찾아나가는 것이 어떨까? 그리고 아이의 작고 여린 소화기를 천천히 느긋하게 응원해주자. 조금씩 더디게 자라더라도, 혹은 조금 작게 자라더라도 맛있게 음식을 먹고 행복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것 같다.
<글을 쓴 김정신 원장은 서대문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으로, 병진(5살)과 병우(3살) 형제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다>
[육아일기] 밥 안 먹는 아이들을 둔, 모든 엄마들에게 바칩니다
입력 2011-02-14 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