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새벽 3시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촘촘히 놓여있는 침대 위에 의식이 없는 여자 환자가 침대 위에 대변을 본다. 중환자실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달려와 대변을 치운다. 문제는 이 간호사들이 이 여자 환자 하나를 돌보느라 나머지 환자들이 단 몇 분일지라도 간호사의 보호 밖에서 방치된다.
중환자들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데다 각종 기기에서 나오는 소리, 의식없는 환자들의 고함소리 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간호사들은 간호사대로 자신이 담당해야 하는 수많은 환자들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중환자가 갑작기 위급한 상황에 빠지자 곧바로 전공의를 호출한다. 하지만 밤새 수술 등으로 체력을 완전 소진한 의사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위급한 상황에 빠진 환자를 눈 앞에 두고 간호사는 의사가 도착할 때까지 발만 동동 구르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는 의료시설이 부족한 제3세계 빈국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외국에서 부러워할 만한 의료 시스템을 갖췄다고 자부하고 있는 우리나라 의료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현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외국인들이 선뜻 우리나라로 의료관광을 올지 의문일 정도다.
의료시스템이 달라 수평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미국의 중환자실은 그야말로 중환자실답다. 한 명의 간호사가 기본적으로 환자 한 명을 담당하며 중증도가 높은 환자의 경우 간호사 3명이 붙어 있기도 한다. 중환자실에는 중환자의학을 수련한 전문의가 교대로 당직을 한다. 환자가 수면이 필요하다면 필요한 환자의 방에는 불을 꺼준다. 환자 한 명의 방마다 변기, TV, 보호자를 위한 간이 침구류가 구비돼 있다. 또, 중환자실 담당 약사는 24시간 교대로 근무하며 중환자에게 처방되는 약들을 점검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중환자실 간호사는 한 명당 적게는 2명에서 3~4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그러다보니 환자들에게는 프라이버시도 없고 ‘인권’이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다. 또 여러 환자를 한 명의 간호사가 담당하다 보니 환자 간 감염에 쉽게 노출된다. 우리나라 의료가 크게 성장했지만 중환자실의 현실만 따져 놓고 본다면 아직도 7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낙후한 현실은 수가가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수가만 현실화된다면 우리나라의 중환자실도 미국처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수가 현실화가 곧 의료비 상승이라는 점이다. 이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결국 현재 의료보험료를 유지하면서 중환자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비교적 경증 환자에 대한 보험료 지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여러 이익집단에서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감기에 걸릴 때마다 쉽게 받았던 의료보험 혜택 덕분에 미래 치명적 질병에 걸렸을 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자기에게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uletmesmile@kmib.co.kr
[기자의 눈/정유진] 중환자에 고통주는 의료체계
입력 2011-01-13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