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국 코리아/보령제약 ‘카나브’] ②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만든 최고의 고혈압약

입력 2011-01-07 18:05

스위스의 다국적제약사인 로슈가 지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치료제인 타미플루로 벌어들인 매출은 약 2조2000억원이다. 또 전세계 1위 의약품인 화이자 리피토(고지혈증치료제)의 지난 2009년 매출은 약 15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하나의 신약이 성공하게 되면 소형 자동차 300만대의 수출효과와 같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정부도 이러한 신약의 부가가치를 인정해 신약 개발을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하고, 다각도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신약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에 불과하다. 1999년 SK제약의 선플라주(항암제)를 시작으로 최근 식약청의 허가를 받은 보령제약의 카나브(고혈압치료제)까지 국산 신약은 15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국산 신약 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지금까지 국내 산업을 이끌어 온 여타 산업 분야와 비교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있는 분야가 바로 여기다.

그동안의 국산 신약의 개발과 성과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국산 신약 개발과 관련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명해 봤다.-편집자 주-

①최고의 고혈압약을 개발하다
②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고혈압약
③“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신약으로 성장시킨다”

[쿠키 건강] 고혈압 약물은 질환의 특성상 연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고혈압약은 한번 먹으면 죽을 때까지 먹는, 즉 장기복용 해야 하는 약이기 때문에 약의 효과는 물론 독성, 부작용에 대한 장기간 관찰이 중요하고 끝도 없이 반복시험 해야 한다. 때문에 후보물질 합성에서부터 인간에게 적용하기 전인 동물시험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집에 다녀 올 땐 속옷, 야식 챙겨와

하루 두 번 먹는 약이면 반나절만 지켜보면 되기 때문에 퇴근이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 한번 먹는 고혈압 약은 밤새 약효가 어떻게 발효되는지 봐야 하기 때문에 퇴근을 못한다. 연구원들이 며칠씩 집에 못 가는 것은 기본. 연구실에는 야전침대가 구비돼 있다.

주말 반납하는 건 물론이고, 명절에 나오는 건 익숙하다. 언제 들어갈지 기약이 없기 때문에 집에 갔다 올 때면 야식, 속옷, 여벌의 옷 등을 챙겨온다.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9시 출근 6시 퇴근의 일반 직장인의 마인드로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사명감 없으면 못한다. 신약 개발하는 데 개인시간이나 가정에 충실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심지어 식구와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고 말한다.

◇맨땅에 헤딩하듯… 모든 것이 새로운 일

개발 당시, 국내에서 개발단계에 있는 고혈압약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처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국내 최초로 간접혈압측정장치를 이태리에서 수입해 와서 실험실에 세팅하고, 참고문헌을 찾아 가며 하나하나 적용하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간접 측정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혈관을 노장 시키는 과정에서 가온 시간이 길어져 흰쥐가 땀에 젖어 사망했던 일, 커프가 새는 줄도 모르고 결과를 기다리며 수십 번을 반복 측정하던 일, 가온 장치가 못 미더워 테이프까지 동원해 실험실 자체를 밀폐하고 그 안에서 새벽까지 쥐보다 더 많은 땀을 뻘뻘 흘리던 일 등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후보물질에 대한 약효와 기전이 확립되는 것이다.



◇후보물질 약효시간 짧아 개발 중단 결정… 연구소장 “운에 맡겨보자”

후보물질을 발굴하던 연구 초기, 수도 없이 많은 시험을 통해 점차 탄력이 붙고, 금방이라도 성과가 손에 잡힐 것처럼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었다. 그때까지 만들어진 수백 개의 합성물 중 가장 효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물질로 동물시험을 진행했다.

그런데 혈압강하 효과는 좋았지만 4~5시간 경과 후 약효가 급격히 감소했다. 고혈압약이 약효의 지속시간이 짧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아무리 혈압 강하효과가 크더라도 약효가 지속적이지 못하면 약을 하루에 두 번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두 번 먹는 고혈압약은 시장성이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었다. 보고를 받은 경영진은 고심 끝에 사실상 신약개발 중단 결정을 내렸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실험초기 단계에서 많은 투자를 할 수 없었다. 그것도 후보물질 도출 단계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이미 다른 제약사들도 예전에 포기한 상황이었다. “우리도 신약개발을 하는 구나”라는 부푼 꿈으로 수년간 이것 하나만 바라보고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연속되는 철야에도 신이 날 정도로 달려들던 담당 연구원들은 힘이 빠져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당시 김상린 연구소장(現 고문)은 마지막으로 경영진을 설득했다. 결국 대신 3개월 정도의 한시적인 조건부 연구기간을 허락 받아냈다. 김상린 연구소장은 “내 운을 시험해 보겠다”는 각오까지 말 할 정도로 당시의 추가 연구 시작은 실로 커다란 무리수를 둔 결정이었으며 마지막 희망이었다. 절박함이 통했을까, 3가지 구조의 물질을 목표로 합성을 진행한 결과 기적처럼 원하던 후보물질을 찾아냈다.

◇영국 연구진도 놀란 열정

영국의 연구소에서 1상 임상시험을 수행할 때 영국과 한국의 13시간이라는 시차 덕분에 토요일 새벽 2~3시에 영국으로부터 날아온 메일을 확인하고 밤을 꼬박 새면서 검토, 협의해 즉시 답장을 보내곤 하던 때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시험 초기 단계에서 단단히 욕심을 가진 연구원들은 나중에 생길 수도 있는 일정 지연을 대비해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획득하려 꼼꼼한 시험계획서를 수립했었다. 2주일 간격으로 받게 돼 있는 중간보고 기간을 단축시켜 단계별 시험이 끝나면 정리하기 전의 데이터를 곧바로 보내줘서 담당 연구원이 직접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래프로 만들기도 하면서 계획했던 2주일 간격을 1주일 간격으로 줄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험 기간은 반에 가까울 정도로 앞당겨졌다. 특히 일요일 아침에 집에서 잠을자던 단현광 박사에게 전화해 상황을 보고하고, 곧이어 막 잠에서 깨어난 김상린 박사에게 전화해 영국에서 보내 온 1차 시험 결과를 설명한 후 오전 내내 졸라서 다음 단계 시험 진입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다음 단계 용량을 투여하도록 하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면서 사고 없이 최초의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영국에서의 1상 임상시험은 신기록을 세우듯 최단 시간에 끝마치고 명쾌한 결과보고서를 획득할 수 있었고, 영국 시험기관에서도 “우리가 위탁을 맡긴 회사에 일정을 재촉한 적은 있어도 회사에서 위탁기관을 재촉하고 시험책임자에게 수많은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보령의 연구원들에게 감탄했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