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연의 건강세상 돋보기] 저출산 문제, 말로만 심각하면 뭐하나

입력 2010-12-08 15:52

[쿠키 건강칼럼] 지난 국정감사에서 원희목 의원 등은 국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굳이 의원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는 사실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이미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대두된 저출산 문제는 국가 미래는 물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생존자들에게도 다양한 방면에서 상당한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이 점차 늘어나면서 노인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이를 부양해야 할 차세대가 없으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현 복지체계의 붕괴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또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노동력 고갈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하고 이에 따른 다문화가족 문제 등 각종 문제가 속출할 뿐 아니라 기업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저축과 투자 감소 등으로 결국 세계화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개인은 물론 국가의 미래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다.

더욱이 인구부족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위축을 가져오게 된다. 한정된 인구, 작은 시장규모에서는 원가비중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생산비용은 올라가고 내수시장은 없어짐으로써 기업은 수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만일 외부요인 등으로 수출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남숙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저출산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자녀요인, 소득요인, 가치관요인, 사회·직장요인 등 크게 4가지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자녀요인으로 ▲자녀 양육비용의 증가 ▲주택비용의 증가 ▲여성의 기회비용 증가 ▲다른 재화에 비해 자녀가 제공하는 정신적 이익 감소 등을 들 수 있다. 또 소득요인으로는 ▲여성의 경제적 역할 변화로 가족에 대한 헌신보다는 개인경력 추구 ▲소득과 경력에 대한 전망 감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증가 ▲고기술 수요증가로 인한 교육기간 연장 ▲학교에서 직장으로의 이동이 길고 어려워짐 등이 있다.

가치관 요인을 보면 ▲자기만족 위주의 가치관 ▲지속적 파트너십 유지 곤란과 불안정성 증가 ▲결혼보다 동거 선호 등이 있으며 사회·직장요인으로는 ▲가족 내 책임감의 불평등한 분배 ▲소득과 경력에서 남성과의 불균형 ▲가족과 여성의 역할 변화에 대한 사회관습이 부정적임 등을 들고 있다.

얼핏 보기엔 복잡하지만 결국 문제의 본질은 경제적 원인과 여성의 가치관 변화로 정리된다.

실제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대학 진학 이전까지만 계산하더라도 1억여원이 훌쩍 넘어간다. 아이 둘을 키우는 데만 2억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젊은 부부의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다. 현저히 모자라는 국공립 보육시설,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 열악한 직장문화 등을 고려했을 때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성들의 가치관 변화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 사회 참여에 대한 강렬한 욕구, 불평등한 직장문화 극복을 위한 자구노력 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를 충족해주는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가치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인의 가치관이 변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보육환경이 갖춰져 있고 여성이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해야만 비로소 여성의 가치관이 바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 보면 많은 대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직장에서 양성평등의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기업이 인사에 있어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을 여성에게 주지 않아야 하고 육아에 있어서도 사내보육시설을 의무적으로 운영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자발적이면 가장 좋겠지만 어렵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이를 법제화해 강제로라도 실시해야 할 것이다.

또 정부는 무엇보다 보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힘을 쏟아야 한다. 산모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것도 좋지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의 확충과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기존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부모를 안심시켜야 한다.

저출산 문제는 이제 국운을 결정짓는 일이 됐다. 단순히 개인의 가치관 변화나 독신주의, 생활환경의 변화를 이유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저출산 문제는 위에서 열거한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난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결정이 일회성이나 선심성 정책에 그쳐서는 안된다.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조창연 의약전문기자 chy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