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무원칙 약가협상, 건강보험 재정 부실에 한 몫

입력 2010-11-22 10:18
[쿠키 건강] 건강보험공단의 원칙 없는 제약회사 약가협상이 건강보험 재정 부실에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 따르면 약가협상은 지난 2006년 ‘5.3 약제비 적정화방안’에 따른 것으로 당시 건강보험재정지출의 29.4%(약 8.4조원)에 달하던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해 도입됐다. 약가협상의 주체는 보험자를 대표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과 약을 생산·판매하는 제약회사이다. 양자 간 협상된 약가에 따라 공단은 국민의 보험료로 이루어진 건강보험재정에서 약제비를 지출하게 된다. 환자들도 이 약가에 따라 병원과 약국에 약값(본인부담금)을 지불한다.

약제비적정화방안에 따른 약가 협상이 시행된 지 만 4년이 다 돼가고 있다. 하지만 약제비는 증가를 계속해 이미 11조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공단의 약가협상력은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험료를 지불하는 국민 모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지 않았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약가를 받은 ‘로나센 정’

국내에는 약 17개 성분의 정신분열증 치료제가 있다. 부광약품의 로나센은 지난해 가을 시판 허가를 받았지만 로나센이 현재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대체약제들의 효과와 안전성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대체약제들보다도 훨씬 높은 가격을 받았다.

로나센을 보험 급여 해주지 않아도 환자들은 아무런 불편이 없다. 굳이 제약사가 원하는 높은 가격을 주면서까지 억지로 보험에 등재시켜줄 이유가 없다.

로나센의 대체약제들 중 1일 투약비용이 최소 50원에 불과한 것도 있다. 로나센의 1일 투약비용은 무려 25배가 넘는 2550원이다. 로나센은 17개 대체약제들과 비교해서 효과나 안전성에 별반 유의미한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에 있어서만은 5위권 내에 꼽힌다.

특히, 정신분열증 치료제 처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리스페리돈 제제와 비교해 보았을 때도 그 비용이 두 배에 육박한다. 한국의 고가약 위주 처방 패턴을 고려해보았을 때 로나센은 향후 저가약을 대체함으로써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도 불필요한 부담을 늘리게 될 것이다.

◇터무니없이 가격이 높은 ‘자렐토 정’, ‘스트라테라 캡슐’

바이엘 코리아의 자렐토는 하지 정형외과 수술을 받은 환자의 정맥 혈전색전증을 예방하기 위한 약이다. 혈전 예방약이라는 큰 범주에서 살펴보았을 때 자렐토의 가격은 최고가에 달한다. 일반적인 혈전 예방약들의 1일 투약비용은 최소 16원에서 최대 2190원 수준이나 자렐토는 6000원이 넘는 최고가를 받았다.

바이엘에서 자렐토의 비교 대상으로 삼은 에녹사파린(enoxaparin)과의 비용을 비교해도 자렐토의 가격은 터무니없이 높은 편이다. 에녹사파린을 고위험군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총 치료비용은 5만9534원이다. 그러나 고관절 수술 환자에게 자렐토를 투여 시 총 치료비용은 20만원을 훌쩍 넘어 비교 약제 가격보다 세 배 이상 소요된다.

ADHD 치료제로 유명한 한국릴리의 스트라테라 약가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트라테라는 2006년 6월 국내 시판허가를 받은 이후 비급여로 판매되다가 2009년 9월부터 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스트라테라의 보험 약가 또한 대체 약제와 비교해서 터무니없이 높은 금액을 받았다. ADHD 치료제로 그동안 널리 쓰였던 메칠페니데이트의 경우 1일 투약비용이 1100원 정도인데 스트라테라의 경우 그 두 배를 훌쩍 넘겨 2650원에 결정됐다.

◇정상적 약 출시 거부 후 약값 대폭 인상 받은 ‘프레지스타’

건강보험공단과 한국얀센은 지난 2008년 5월 26일 에이즈치료제 프레지스타에 대한 약가협상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얀센은 부속합의서를 통해 ‘보험급여 대상으로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후 얀센은 무상공급 형태를 유지하며 정상적 약 출시를 거부해왔다. 협상에서 약속했던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았지만 공단은 돌연 지난 9월 16일 프레지스타 약가를 41% 인상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협상이 끝난 후 약의 출시를 거부하고 부속합의서 약속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얀센의 행태에 대해 어떤 제제 조치도 없이 공단은 그저 약값을 대폭 인상시켜 준 것이다.

◇건보공단, 약가협상 근거와 원칙 부재가 문제

신약의 예상 사용량은 약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얼마만큼 사용되는가에 따라 건강보험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이 판매된 이후 최초로 예상했던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이 사용되는 경우 1회에 한해 약가를 조정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실제 사용량이 예상량보다 수백, 수천 배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규정상 약가 인하는 10% 내에서만 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과 그 10% 내에서도 공단이 제대로 된 약가 인하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얀센의 다코젠 주의 경우 사용량이 580% 넘게 증가했지만 약가는 단 6.5% 떨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사용량 연동 협상에 따른 참고 가격 산식에 따라 계산해 보면 최소 8% 이상 약가를 떨어뜨릴 수 있다.

한미약품의 에소메졸캡슐 2mg도 마찬가지이다. 사용량은 약 400% 증가했지만 약가는 단 5원(0.5%) 떨어졌다. 참고 가격 산식에 의하면 최소 7% 이상 약가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심지어 종근당의 프리그렐의 경우 사용량이 약 170% 증가했으나 약가 인하는 전혀 되지 않았다. 최소한 참고 산식에 따른 약가 인하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공단의 약가협상력이다.

보건복지부는 약제비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으로 신약등재가 24% 정도 기여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로나센, 자렐토, 스트라테라에서 보듯이 신약에게 대체약제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주는 현재의 협상 행태를 계속한다면 향후 약제비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한 사후 약가도 부실해 위에서 예를 들었던 사용량 연동 협상이 진행된 5개 약제를 보았을 때 공단은 단 한 개의 약제에서도 참고 가격에 준하는 수준으로도 약가를 인하시키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약가협상을 하는데 있어서 공단은 근거와 원칙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가협상에는 대체약제들의 선정, 대체약제들의 투약 비용 편차, 협상약의 투약 비용 계산 등 많은 변수들이 있다. 변수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수십, 수백 배의 약가 차이가 날 수 있다. 이처럼 환자와 국민 전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협상 담당자 1~2인에게 맡기는 것도 문제점 중에 하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