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칼럼] ‘정말 우울하다.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나 회의가 밀려온다. 거창하게 ‘제약보국(製藥報國 ; 국민 건강을 위한 약을 만듦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에서 제약회사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이게 정말 가야하는 길인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자초했는지 후회막심이다.
밖으로는 리베이트 문제로 의·약사에게 시달리고 안으로는 직원관리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야 하는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게다가 복지부와 공정위는 리베이트 근절이니 뭐니 하면서 눈앞에 칼을 들이대고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제품 하나 허가받으려면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 언제 이뤄질지 그 기한을 알 수 없음)이니······.
며칠 전엔 별 어이없는 일을 다 겪었다. 직원과 함께 개인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이 선생님, 참 가관이었다. 리베이트를 1원 단위까지 계산해서 달라고 하신다. 괜히 왔다. 하도 기가 차 그냥 만원 단위까지 올려서 드리고 말았다. 요즘 의사 선생님들, 많이 힘드신가보다······.
병원 담당 영업직원에게 들은 얘기도 있다. 의사 선생님 마음을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차란다. 손세차 해드리면 그리 좋아하신다나. 많이 해드렸단다. 어쩐지 요즘 들어 실적이 좋더라니······. ‘헐~~~’ 요즘 애들 사이에 휴행하는 단어라며? 헛웃음만 나온다.
괜히 물어봤다. 멀쩡히 좋은 대학 나와 그래도 이름은 들어봤다고 우리 회사에 지원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 친구인데······. 명색이 사장인데 그런 말을 듣고도 뭐라 위로해줄 말도 딱히 없다. ‘그런 짓 그만 둬’ 하고는 싶지만 당장 매출에 영향이 있을 텐데 그러지 말라 할 수도 없고. 괜히 미안해지고 직원 보기 남우세스럽다.
이달 28일부터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죄가 시행된다는데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재작년부터 그렇게 겁을 줬어도 사실 각 회사마다 줄 거 다 줬다. 안주고서야 어찌 영업이 됐을까. 나만 안주면 우리 회사만 시쳇말로 박살이 나니 안 줄 수가 있겠나. 아, 앞으로 현금 마련이 더 힘들어질 텐데, 뭐 좋은 방법 없나?
이젠 직원 관리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회사 영업기밀을 다 알고 있으니 함부로 정리할 수도 없고 오히려 거꾸로 눈치를 봐야 한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월급 주고 복지까지 챙겨주면서······.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 친구 그만 두면 거래처까지 함께 날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혹시 기분 나쁘면 언제 공정위로 달려가 내부고발 할 지 모르니 그저 참고 타협해야 한다.
얼마 전 식약청에서 행정처분을 받았다. 과대광고라나. 지금까지 별 무리 없이 진행해 온 광고였는데 경쟁사에서 찔렀단다. 식약청에서도 신고가 들어와 어쩔 수 없단다. 벌금 냈다. 매출도 그리 크지 않은 제품인데 확 없앨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 제품을 약국에서 찾는다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우리도 리베이트 정말 없애고 싶다. 각 회사마다 적게는 매출의 15%에서 많이는 25%까지 주는 게 현실이다. 대다수 제약회사 영업이익 한 번 봐라. 10% 넘는 곳이 드물다. 죽도록 제품 만들어 남 좋은 일만 하고······. 당신 같으면 이 일 하고 싶겠나. 그리고 지금까지는 돈을 준 회사만 적발했다. 받은 사람이 있으니 준 것 아니겠나. 준 사람만 처벌하는 것이 말이 되나. 그것도 약자(弱者)를······.
리베이트 없앨 방법 분명히 있다. 이번 쌍벌제 시행을 계기로 위반으로 적발된 회사와 의사, 양쪽 다 그야말로 준엄하게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 확실한 본보기로 삼으면 생각보다도 훨씬 빠른 시일 내 근절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인정받고 있는 의사인데 돈 좀 받자고 그 망신을 자초하기야 하겠나. 하긴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게 세상일인데······.
아무튼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터지고······. 우린 무슨 봉인가. 진짜 한마디 하고 싶다.
왜 나만 갖고 그래!~~~’
조창연 의약전문기자 chyjo@kmib.co.kr
[조창연의 건강세상 돋보기] 어느 제약회사 사장의 하소연
입력 2010-11-17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