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건강] ‘퇴행성 T세포 림프종’이라는 혈액암 진단을 받은 정유운씨(19)가 RH-B형 혈소판을 제대 수혈받지 못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RH-혈액형을 가진 환자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많은 혈액을 수혈 받아야 하는 혈액암 환자의 불안은 더욱 크다.
정유운씨는 투병기간인 35일 동안 매일 2유니트씩 총 70유니트의 혈소판을 수혈받아야 했지만 총 30유니트 밖에 수혈받지 못했고 이 중에서 적십자사는 전혈에서 분리한 농축혈소판 12유니트만 공급했고 나머지 성분채혈혈소판 18유니트는 정유운씨 아버지가 직접 발로 뛰어 구한 것이다.
혈액암 진단을 받으면 혈액을 응고해 지혈시키는 역할을 하는 혈소판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자연출혈로 환자가 위험에 처할 때가 많다. 이때는 혈소판 수혈 외에는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문제는 다른 의약품과 달리 혈액은 인공생산이 불가능해 누군가의 헌혈이 없으면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유운씨와 같이 희귀혈액인 RH-혈액형을 가진 환자의 경우에는 혈액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우리나라에서 RH-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0.3%에 불과하다. 1000명 중에 약 3명이 RH-혈액형이고 혈액형이 A형, B형, AB형, O형 4가지 종류임을 감안할 때 RH-B형인 정유운씨가 자신에게 혈소판을 줄 수 있는 한명의 헌혈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1000명 이상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헌혈율이 5%임을 고려하면 2만명 이상에게 부탁을 해야 하고, 총 35일간 하루 2명의 혈소판 수혈을 받으려면 140만명 이상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다. 환자가족이 아무리 뛰어다녀도 혈액암 환자의 치료에 필요한 만큼의 RH-혈액형은 구할 수 없다. 혈액암 환자가족들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고 환자와 함께 장기간 무균실에 들어가 간병하는 것만으로도 지칠대로 지쳐있다. 이들에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혈액까지 직접 구하게 만드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잔인하기까지 하다.
정부, 적십자사 그리고 의료기관은 직접 나서서 환자가족은 환자 간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수혈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번 정유운씨의 사망원인 중 하나로 예상되는 RH-B 혈소판 공급 부족도 정부나 적십자사에서 RH-혈액형의 년간 수급규모를 예상해 사전에 기획채혈을 하고 적정분량의 재고를 유지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적십자사와 병원이 적정재고 유지를 꺼리는 이유는 유통기간 경과로 혈액이 폐기됐을 때 그 비용을 자신들이 떠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혈액 폐기량이 가장 적은 나라이다. 혈액 폐기량이 많은 것은 문제이지만 혈액 폐기량이 세계에서 가장 적다는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혈액 재고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그 피해는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그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본은 혈액 폐기를 감수하면서까지 RH-혈액의 적정 재고를 유지해 RH-혈액 수급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부와 적십자사도 RH-혈액의 년간 소요량을 예상해 기획채혈을 한 후 적정 재고를 유지해 RH-혈액의 공급 부족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아울러 의료기관이 환자나 환자가족들에게 혈액을 직접 구해오도록 요구하지 못하게 혈액관리법 개정 등 입법적인 조치도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수 기자 juny@kmib.co.kr
RH-혈액형 공급 부족, 환자들 불안 가중
입력 2010-10-25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