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헬기 이용, 소프트웨어 갖춰야

입력 2010-09-29 13:00

글·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

[쿠키 건강칼럼] 최근 많은 세금을 투입하여 도입한 응급헬기를 엉뚱한 목적에 전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보도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응급환자에 대한 출동 빈도가 매우 낮아 헬기 1대당 연간 10명 미만을 이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놀리고 있는 것보다는 높은 분들에게 인심이라도 쓰는 편이 여러 측면에서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응급헬기의 존재목적에 대한 의학적 개념과 운용방법과 관련한 각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도입하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응급헬기를 산악이나 도서지역에서 발생한 환자의 이송에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국토가 작아 필요성이 적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헬기 운용의 일차적인 목적은 중증 외상 즉 교통사고 환자를 즉각 수술이 가능한 외상센터에 이송하는 것이다. 국토가 광활한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일반화 되어있다. 가장 높은 고도가 60여m에 불과하고 다도해가 아니라서 섬도 적은 런던 시내에서 헬기가 수시로 응급, 특히 외상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0년쯤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중증외상 환자를 아무데나 가까운 종합병원에 실어다 놓으면 사망률이 증가한다. 중증 외상환자의 생존율을 올리기 위해서는 손상발생 후 1시간 이내에 수술을 개시해야 하며 즉각 수술이 가능하도록 항상 준비되어 있는 외상센터에 이송해야 한다. 하지만 외상센터의 운영에는 막대한 재원과 인력이 필요해 미국에서도 1급 외상센터 1개소가 넓은 지역, 때로는 여러 주를 관할한다. 사고현장의 중증외상 환자를 외상센터까지 이송하는데 구급차로 30분 이상이 걸린다고 판단되면 헬기이송을 해야 한다.

이러한 요건들에 맞추기 위해 각론에 해당하는 여러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신고를 받은 상황요원이 신고자나 구급대원과의 통화를 통해 헬기 출동이 꼭 필요한지 즉각 결정할 수 있는 의학적 능력이나 권한이 있어야 하며 고속도로를 포함한 여러 장소에 헬기가 내려앉을 수 있는 제도적, 공간적 준비와 어떤 의료행위를 어떤 인력이 어떤 의사의 지도감독 체계 하에 시행할 것인지 등에 대한 의학적 지침이나 교육이 필요하다. 외상센터의 설립이 미진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병원에서 즉각 수술이 가능할지 알아봐 주는 1339응급의료정보센터의 역할도 필수적이다.

독일에서는 헬기도입 후 외상환자의 사망률이 3분의 1로 감소하였으며 일본에서도 헬기가 고속도로에 내려앉고 있다. 헬기의 도입과 운용에는 많은 고정비용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응급헬기 운영 실태는 엄마가 사 준 최고사양의 학습용 컴퓨터를 아들이 게임 전용으로 쓰고 있는 형국이다. 목표의식이 없다면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상환자 사망률은 여전히 높고 고속도로에서는 많은 중증외상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불철주야라면 엉뚱한 손님들에게 인심 쓰는 일은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응급헬기를 운용한다면 훌륭한 외상센터를 많은 돈을 들여 건립하더라도 외상환자의 생존율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세금 낭비를 줄이고 외상환자의 생존율을 올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