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에 대한 병원 시각 변화 절실해…끝없는 규모 경쟁도 문제
[쿠키 건강칼럼] 항공기 사고의 원인을 보면 기상악화와 착륙공항에 대한 조종사의 생소함, 기장과 부기장이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는 새로운 팀, 과로로 인한 조종사의 피로, 착륙공항의 열악한 조건, 관제탑과 조종팀 간의 소통장애 등이 어느 날 동시에 겹쳐지는 경우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겹치지 않으면 사고발생 가능성이 훨씬 낮아진다고 한다. 병원에서의 의료사고도 이런 식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수술 부위가 바뀌는 경우를 보자. 먼저 진료 시 담당의사가 수술 부위를 잘못 기재할 수 있다. 특히 좌우로 구분되는 부위의 경우 환자는 의사와 마주보는 상태에서 진료를 받기 때문에 의사가 피곤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다보면 진료기록지에 반대로 기입할 가능성이 있다. 거울상이기 때문이다.
이후 환자는 잘못된 처방에 따라 X-ray를 촬영하러 가게 된다. 대개는 방사선과 기사에 의해 착오가 교정되는데 그날따라 신참기사가 촬영했고 워낙 정신이 없다보니 부위가 바뀐 것을 간과한다.
사실 부위를 바꿔서 촬영하면 보통 환자가 이상하다고 지적하는데 그날따라 내성적인 환자라 ‘무슨 의미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수술을 위해 입원한 후 병실에서 만나는 주치의도 깜빡하면 다음날 다른 부위를 수술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환자가 수술을 받기까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이중 단 한곳에서라도 오류가 시정됐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을 텐데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런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의료사고의 70% 정도는 사전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30%는 어쩔 수 없는 사고라 해도 예방 가능한 의료사고가 70%나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TV 고발프로그램은 주기적으로 의료사고를 방영한다. 몰래카메라로 촬영된 의사의 태도를 보면 환자를 확보하기 위해 시술과정을 너무도 편하게 말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선정적으로 의료사고를 대하는 방송국의 태도는 십분 이해한다고 치자. 하지만 어째서 매번 고발만 하고 사고에 대한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만 신경 쓸 뿐 근본적으로 의료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은 없는지 모르겠다.
의료계도 이 점에서는 할 말이 없다. 개개의 의료기관들은 의료사고가 나면 사고를 봉합하려고만 했지, 사고의 반복을 막기 위한 근본적 노력을 한 적이 없었다. 또 범의료계 차원에서 논의된 적도 없다.
아마 필자도 최근 근무하는 병원이 국제의료기관인증(JCI : 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을 받지 않았다면 상당수 의료사고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의학발전의 선두를 달리면서 한편으로는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시스템’으로 막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좌우가 바뀌는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의료인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 사고를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인증기준을 보면 좌우가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 입원 당일 간호사와 의사, 환자가 모여 수술 부위를 함께 확인하고 표식을 한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는 마취 전 환자와 의사, 간호사가 모여 수술 부위를 재확인하고 서명해야 비로소 마취에 들어가고 여기에 더해 집도의는 수술 직전 다시 한 번 환자의 신상과 수술내용에 대해 확인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수술 부위가 바뀌는 의료사고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수술 부위가 바뀌는 사고가 날 경우 병원은 해당 의사에게 사고경위를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해 늘 신중하게 진료할 것을 권고하는데 그쳤다.
이런 식의 사후대책은 사고를 경험한 의사에게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다른 의사들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데도 ‘의료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사고가 팽배했기 때문에 시스템을 통해 예방하려는 시도가 국내 의료계에서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다행스럽게도 많은 의료기관들이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국제인증평가를 시도하는 의료기관은 물론 그 밖의 병원들도 새로운 각도에서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해외환자 유치를 독려하고 있다, 의료시설과 진료수준의 선진화로 인해 아시아권에서는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한 결과인데 필자는 해외환자 유치에 앞서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것이 바로 국내 의료기관들의 의료사고에 대한 태도 변화와 실천이라고 본다.
최첨단수술을 받으러 왔는데 좌우가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난다면 이는 그야말로 나라 망신이 아닐까. 사회 곳곳에 만연된 안전불감증이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의료계가 안전사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로비에 대리석을 깔고 병실을 고급화하고 규모를 대형화해 수천 병상을 보유하는 것이 좋은 병원의 모델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OECD 기준 인구 대비 병상수가 평균의 2배인 우리나라에서 병원 간의 규모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진정 좋은 병원은 규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의 질로 평가해야 한다.
[박종훈 칼럼] 의료사고, 도대체 왜 일어나는 걸까
입력 2010-05-25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