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종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쿠키 건강칼럼] 얼마 전 의사가 아닌 대학후배에게서 자기 아이가 O자형 다리라면서 인터넷을 뒤져보니 신발로 교정이 가능하다는 곳이 있는데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수도 없이 받는 터라 불가능하다고 자세히 설명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그런 신발, 교정기를 판매하는 분들도 의사라는 것이다. 후배는 필자의 말이 맞는다면 사이비의사들의 이런 행태를 막아야 하지 않느냐고 추궁해 난감한 적이 있었다.
O자형 다리는 많은 어린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다리 모습이다. 다리는 회전하면서 자라기 때문에 성인이 되면 자연교정이 되는데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효과가 좋다는 것도 고가의 교정기나 신발 덕분에 교정된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 자라면서 자연교정이 되니 그야말로 100% 효과가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땅 집고 헤엄치기’식 장사인 셈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니 허리가 구부정하고 휘어 보여 전문가(?)에게 보였더니 척추측만증에 골반이 뒤틀려 이대로 성장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가급적 빠른 시간 안에 뒤틀린 골반을 바로 잡고 자세교정도 받아야 한다는 권고를 들은 후 돈도 돈이지만 아이 상태가 걱정돼 소아정형외과, 척추정형외과 전문가도 아닌 필자에게 아이를 데리고 와 검사를 받는 분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골반은 힘을 가해 만져준다고 교정되는 간단한 구조물이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척추측만증을 갖고 있지만 교정을 하고 교정기를 착용해야 하는 아이들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척추측만증이라고 진단 받은 아이들의 상당수가 사실은 정상적인 범주에 드는 경우가 많다.
이밖에도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후 헬스장에서 만난 트레이너로부터 심각한 디스크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를 듣고 무슨 전문가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수 주 동안 무턱대고 교정치료를 받는 사람.
적외선체열기로 진단해 본 결과 허리 곳곳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 MRI를 촬영해 보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장애가 남는다며 흉터도 작고 회복도 빠르다면서 서둘러 보험도 되지 않는 시술을 해야 한다는 권유를 받고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들.
의사로서 이를 그저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먼저 이런 이상한 일들이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돼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 과거에는 의사가 아닌 비의료인들이 이런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적발 시 고발도 가능하고 환자 역시 비의료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의심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의사들이 이런 행위에 학문적이고 과학적이라면서 실제로는 근거 없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럴까? 사회는 모든 면에서 선진화·문명화 되는데 왜 의료는 이런 사각지대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일까?
해답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소견을 전제로 말한다면 이는 저수가정책이 빚어낸 의료의 왜곡현상이라고 본다. 의사 개개인의 자질문제를 왜 사회문제로 보느냐고 이의를 제기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일정 부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저수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질병을 교과서적으로 보험기준에 맞게 치료하는 방식으로는 존립 자체가 도저히 어려운 의사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의사들도 엄연히 직업인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히포크라테스정신을 강요하기에는 숫자도 너무 많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기 때문에 경제적 수입을 고려하지 말라고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의료인 스스로의 자정능력이 한계를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의사협회가 회원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이다보니 의료행위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 진의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협회가 정부와의 관계에서 회원들이 신뢰할만한 대표기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현재 의사회비를 내는 회원이 갈수록 격감한다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고 할 것이다. 건강보험으로 치료하는 분야에만 관심을 갖고 재정 건전화 논의를 하다 보니 정작 국민들은 왜곡된 의료행위에 노출되고 결국 전체 국민의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기현상을 맞고 있다.
배고프면 나쁜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탈된 행위가 합리화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단속과 본인의 양심에만 기대 그런 현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발상이다. 의료와 교육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관계자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칼럼] 심각한 의료왜곡현상,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입력 2010-05-07 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