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종훈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
막연한 구호 아닌 시스템으로 막아야
[쿠키 건강칼럼]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 사고가 강하다. 남의 불행을 보고도 자신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인의 주식투자나 다단계판매의 위험성에 대해 수도 없는 전문가들이 경고해도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 역시 지나친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자신만의 경제적인 손해로 국한된다면 크게 탓할 수 없지만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태도가 팽배해지면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의 천안함 침몰사고만 봐도 그렇다. 아직 원인은 정확히 모르지만 해상에서 배가 침몰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가상할 수 있고 그런 경우에 대비한 준비는 철저했어야만 했다. 뛰어난 전투력을 갖춘 전사들이 전투에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인해 사망한다는 것은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이런 식의 안전관리와 관련된 문제들이 병원에서는 어떨까? 해외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자 나설 만큼 국내 의료는 기술과 시설 면에서 선진국 수준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우리가 선진국 수준의 의료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최첨단 로봇수술도 잘한다. 간이식 분야는 세계가 놀랄 정도다. 우리나라보다 고가의 영상 장비를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널려있는 것이 의료장비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고 기본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최첨단 수술을 할 줄 알면 뭐하나? 고가의 영상장비가 있고 수준 높은 치료법을 알면 뭐하나? 정확하게 환자를 구별하지 못해 다른 환자를 검사하고 엉뚱한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얼마 전 모 방송사 고발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 의료사고로 고생하는 환자와 가족들의 억울함을 잘 보여주면서 늘 그렇듯이 의사가 아닌 환자와 가족들이 의료사고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방송과 의료계를 포함, 사회 전반적으로 의료사고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누구의 잘못인지를 가려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해 어떠한 고민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강조하지 않는다.
의료계도 문제다. 조금씩 의료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정신 못 차리고 있는 수준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파급효과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만 할뿐 재발을 줄이려는 노력은 그저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모니터링하지 않아 수면내시경 후 사망하는 환자가 절대 생기서는 안 된다. 절대로 의료진의 착각으로 인해 좌우가 바뀌는 수술이 있어서도 안 된다. 확인절차를 생략하는 바람에 다른 환자를 채혈하거나 엉뚱한 환자에게 주사나 약이 들어가는 일들이 있어서 되겠는가.
이런 일들이 생기면 그저 부주의한 어느 의료진의 실수라고만 생각하고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도 그럴 수 있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의 차이에 따른 사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시스템으로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고에 있어서는 인간을 믿으면 안 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어느 병원이든 회의를 하고 문제를 교정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근본적 접근 보다는 사후약방문식의 실효도 없는 대안을 내놓고 만다.
다시는 재발이 없게 하려는 효과적인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하자는 다짐 정도에 그친다. 경험컨대 ‘앞으로 우리 잘하자’는 구호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이 항상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병원평가시스템을 형식에 그치고 있는 기존 시스템이 아닌 국제기준에 맞는 안전관리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생각한다고 한다. 이번을 계기로 이제 병원에서만이라도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고대한다.
의료사고는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발하지 않게 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야말로 진정한 근본대책이라 할 수 있다. 세계화를 지향하는 한국의료가 진정 선진국의료라고 자신하려면 안전사고 없는 의료문화의 정착이 절실하다.
[칼럼] 의료사고 부르는 병원의 안전불감증
입력 2010-04-13 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