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형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내과 교수
[쿠키 건강칼럼]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전화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다행히 병원으로 빨리 옮겨 의식을 잃지 않고 계신단다. 평소에 혈압이 있었는데 별 증상이 없어 약을 먹지 않고 지내다가 기어코 뇌졸중이 온 것이다. 환자는 몇 년 전 심근경색이 있어 풍선을 이용해 심장혈관을 넓히는 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아니 심근경색까지 앓으신 분이 그동안 약을 드시지 않고 있으면 어쩝니까?”
하도 답답해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아들이 조용히 필자에게 찾아와 말했다. 그 일이 있고나서 병원도 가고 약도 드시자고 했는데 어머니(환자의 부인)가 말리셨다는 것이다. 약은 한번 먹으면 중독되고 몸에 독이 될 수 있으니 음식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우겼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시작된 부인의 “이것은 뭐에 좋으니 먹어야하고 저것은 뭐에 나쁘니 먹으면 안된다”는 식의 식생활 간섭으로 인해 병원은커녕 먹고 싶고 싶은 것 한번 변변히 먹어보지 못하다가 덜컥 중풍으로 눕게 된 것이다.
부인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병은 치료 도중 약을 끊기 어렵다. 약을 끊으면 다시 혈압이 올라가거나 혈당이 올라가기 쉽다.
중독성은 없지만 약을 계속 먹어야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치료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이다.
약은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약을 허용치 이상으로 먹지 않으면 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약에는 용법·용량이 기재돼 있고 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이다.
약을 열심히 드시는 분 중 어떤 분은 수년전의 약 처방을 보물처럼 여기면서 같은 약으로만 드신다. 하지만 약도 상태에 따라 수시로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 환자에 대한 정기검사가 필요하다. 증상이 없는 고혈압이나 당뇨는 검사하지 않으면 병이 낫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합병증을 알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약을 잘 먹는 것만큼 정기적으로 의사를 방문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병이 약으로만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이나 음식도 중요하다. 다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환자처럼 부인의 지극한 정성이 본의 아니게 때로는 남편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형규 칼럼] 남편을 해친 부인의 지극한 정성
입력 2010-01-27 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