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한 이후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소수의견을 내는 의사들도 있다. 의료 여건이 열악한 지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무너진 의료 시스템을 재건하려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들은 의대 정원 확대가 지역·필수 의료 인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할당제, 유인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의학을 전공한 의사 김종희씨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역소멸과 고령화가 동시에 닥치면서 지역 의료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 등에서 근무하며 지역 의료 현장을 누비는 김씨는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소속 의사다. 이 단체는 돈벌이 대신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지키는’ 의료 본연의 가치를 강조한다.
김씨는 지역에선 병원 부족만큼이나 의사 부족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농어촌에 홀로 사는 노인이 많지만 교통수단이 부족해 수시로 병원을 찾기 어려워 제때 진찰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을 주기적으로 찾아가는 재택의료센터 의사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의사 수가 충분치 않다. 김씨는 “전국에 재택의료센터 83곳이 있는데 아직 부족하다”며 “지방자치단체마다 적어도 한 곳씩 설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는 개원의나 대형병원 의사가 아닌 중소규모 종합병원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도 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을 맡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는 대형병원 2곳과 중소규모 종합병원 6곳이 있지만 위급 상황일 때 도민과 관광객은 대형병원으로 몰린다. 중소규모 병원은 의사가 부족해 야간이나 휴일 진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제주도는 이틀에 한 번꼴로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발생한다”며 “의대 정원을 늘려 중소규모 병원 의사를 확충하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외과 전문의로 활동한 정일용 경기도의료원장은 의대 증원을 하려면 인력 분배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뽑은 의사들이 ‘빅5 병원’으로 다시 쏠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지역 의대를 졸업하면 소재지 병원에서 일하도록 할당제를 도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지역 근무를 유도하는 장학금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원장은 “공중보건장학생 제도가 있지만 1년에 1000만~2000만원을 주는 게 전부”라며 “돈을 받는 동안 지역에서 일해야 하는데, 금액이 적어 포기하고 떠나는 학생이 많다”고 얘기했다.
이의철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 교수는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을 덜어야 필수의료 인력을 늘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증원 인력 다수가 응급의료 등 기피 분야를 담당하도록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의사 정원 증원은 필요하지만 더 많이 배출되는 의사 다수가 나서서 필수의료를 하겠다고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며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고 싶게끔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