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6시30분쯤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기자가 회를 파는 한 노점 의자에 앉자 상인은 다짜고짜 “고루고루 섞어드릴까”라고 물었다. 메뉴판을 주지도, 메뉴를 묻지도 않았다. 순식간에 테이블 앞에 놓인 접시에는 연어, 방어 등이 섞여 있었다. ‘고루고루’의 말은 모둠회를 뜻했다. 1인분 가격이 1만5000원인 모둠회는 메뉴판 사진보다 훨씬 적은 양이었다. 결제하려고 카드를 건네자 상인은 천막에 걸린 계좌번호판을 가리켰다.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뜻이었다.
횟집을 지나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기는 빈대떡 노점에 가보니 외국인 2명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1만원짜리 해물빈대떡을 주문하자 손바닥보다 약간 큰 크기의 빈대떡이 나왔다. 해물은 10원짜리 동전보다 작은 칵테일 새우 3개뿐, 나머지는 밀가루 반죽이었다.
최근 광장시장을 비롯한 전통시장이 메뉴 바꿔치기, 카드결제 거부, 위생 문제 등으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국내 손님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광장시장은 한때 영국 가수 샘 스미스가 찾으며 국제적 명소로 떠올랐지만, 바가지 논란 탓에 내수 시장 손님들은 떠나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과 비교해 광장시장의 2021년 시장점포 수는 16% 증가했지만, 시장 당일 평균 고객 수는 15% 감소했다.
이날도 노점이 모여 있는 안쪽 골목에는 외국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설 연휴에는 구독자 50만명을 보유한 유튜버가 방문한 가게에서 아무런 안내도 없이 더 비싼 메뉴를 내줘 문제가 됐다. 지난해 12월에는 1만5000원짜리 모둠전을 시켰는데 지나치게 적은 양이 나와 바가지 논란이 일었다.
이에 광장시장 상인회는 정량 표시제 등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여전히 대다수 노점은 정량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이날 오후 9시쯤 가게 마감을 준비하던 전집 사장은 “상인들 사이에서 정량을 표시하겠다는 얘기는 특별히 없다”고 전했다.
이날 시장에서 빙수 가게를 찾아다니던 20대 여성 A씨는 최근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바가지를 씌우는 가게가 일부가 아닌 것 같다. ‘한 번 올 사람이니까’ 하는 마음에 그러는데 손님은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장시장 단골들도 최근 손님이 준 것을 체감하고 있다. 노점 ‘누나네’ 단골이라는 40대 여성은 “오후 7시 기준으로 이 정도면 외국인은 물론 손님이 많이 즐어든 편”이라며 “논란이 된 가게들 때문에 양심적인 가게까지 피해를 보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전통시장의 바가지 논란과 관련, 정부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 가게로 인한 문제가 다른 상인과 상점에도 피해를 주고, 결국 국가 관광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물가 지도 및 관리 책임이 있는 관할 구청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