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지금 사는 모습이 곧 나의 미래다

입력 2024-02-16 04:04

무언가에 치열하게 빠져본
젊음만이 미래 불안 잠재워
하루하루 의미·재미 찾아야

얼마 전 직장인 커뮤니티에 쓴 젊은 남성의 글이 SNS에 회자되었다. 인생에 별 사는 의미도, 재미도 없다는 요지의 넋두리였다. 그 이유가 취업을 못 했다거나 집안 사정이 불우했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고 있어서 더 분란을 일으킨 듯하다.

최근에는 또 한 어머니가 올린 글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는 같이 사는 대학생 자식에 관한 글이었는데,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들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는 내용이었다. 공부도 안 해,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도 안 해, 자고 일어나서 온종일 게임만 해대는 아들을 월세 얻어 내보냈더니 이제야 살 것 같단다. 많은 어머니가 제발 눈앞에서만 보지 않아도 낫겠다며 짙은 공감을 보냈다.

취업이 어렵고 먹고사는 문제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빡빡하게 지내는 젊은이가 많다. 한편으론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 해도 지금 주어진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다 써야 할지 알 수 없어 무력하게 보내는 청춘도 숱한가 보다. 나 또한 그 시절을 거쳐 봤으니 방황하는 심정이 이해되기도 한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막연한 젊음과 미래는 원래 불안한 법이니까.

그러나 그 시절을 거쳐 반평생 넘게 살아봤으니 또한 깨달은 바가 있다. 젊을 때야말로 뭐든 해 보고 실패하고 다시 얼마든지 도전해 봐도 되는 특권이 주어진 시기였다. 일이든, 사랑이든, 생계든, 취미든 무언가에 치열하게 빠져본 젊음만이 그 불안을 잠재우고 10년 후 그만큼 성장한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거였다. 지금 돌이켜보니 막연히 흘려보내기엔 아깝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엄마뻘인 내가 열 마디 말을 보태거나 백 마디 글을 쓰기보다 차라리 영화 한 편을 보면 어떨까 권하고 싶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4년 주기로 열리는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실황 과정을 보여주는 ‘크레센도’다. 2022년 역사상 18세 나이로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 임윤찬의 연주 실력이야 알고 있었다 해도 이 영화의 울림은 각별하다. 같은 영화를 연이어 보는 일이 거의 없는데 기어이 ‘확장판’을 보기 위해 다시 극장을 찾았다.

클래식 상식에 어두운 나는 우선 ‘크레센도’를 통해 반 클라이번이라는 피아니스트는 물론 콩쿠르가 치러지는 피 말리는 전 과정을 손바닥에 새기듯 알게 되었다. 마치 국내에서 하는 가수 서바이벌 경연 과정처럼 51개국 388명이 지원한 가운데 공개 오디션을 통해 뽑힌 30명 본선 진출자의 개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다. 텍사스 포트워스에 모여 약 2주간 호스트의 집에 머물면서 4번의 공개 라운드를 거쳐 18명, 12명, 6명으로 좁혀진다.

콩쿠르이기에 당연히 1명의 우승자가 있고 다수의 낙오자가 생긴다. 하지만 경연자들은 피아노라는 악기에 빠져 사는 비슷한 또래의 연주를 접하는 동안 연주자로서 성큼 성장한다. 단언컨대 영화를 보는 관객조차 임윤찬이 준결선에서 연주한 리스트의 ‘초절기교’ 전곡 연주를 무삭제로 듣고 난 뒤에는 음악을 듣는 수준이 올라가리라. 더불어 여간해서는 잘 울지 않는 나도 온 힘을 다해 연주하며 줄줄 흘리는 그의 땀방울을 보면서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연주를 하기까지 18세 소년은 대체 얼마만큼의 땀과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은 걸까. 세상에 공짜란 없고 지금 그가 내디디고 있는 한 걸음이 미래를 향해 이어지는 길을 만들어 나간다.

즉 미래란 보이지 않는 막연함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이 곧 미래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하루하루 의미 없고 재미없는 인생이라면 10년 후에도 그대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젊음이라는 시간과 특권을 어찌 허투루 낭비할 것인가. 임윤찬의 꿈 꾸는 듯한 표정, 놀라운 몰입에 예순을 바라보는 나도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마녀체력('걷기의 말들' 작가·생활체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