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기독교 진리의 실천적인 핵심은 사랑이다. 이 사랑에는 제한적인 수식어나 서술어가 없다. 사랑은 모든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지 항상 실천해야 하는 영원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생의 등대로는 삼고 그쪽으로 지향해야 한다.
사회의 종교적 책무를 맡은 교회는 모든 사람, 모든 계층, 모든 신분, 모든 민족, 모든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의 국권과 민족성을 탈취한 일본도,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동포를 무참히 학살한 북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분단에 일조한 미국도, 역사 속에서 우리를 가장 오랫동안 괴롭힌 중국도 사랑해야 한다.
요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대표적 선지자다. 그는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킬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고 촉구하는 사명을 받았으나 민족주의 사상이 골수에 박혀 즉각적인 불순종을 택했다. 억지로 순종한 이후에도 12만여 명의 니느웨 시민에게 멸망이 아니라 용서가 주어지자 요나는 용서의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는 오만한 광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을 짓밟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법정에 당당히 출두해 기꺼이 재판을 받으셨고 그의 탄핵을 외치지는 않으셨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헤롯을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에돔 출신의 무자격자 운운하며 하야를 요구할 수도 있었으나 그리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땅을 군홧발로 짓밟고 자신에게 죽음의 채찍질을 가한 로마 군인들도 복음의 대상으로 여기며 그들의 죄도 대신 짊어지셨다.
각 분야에서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정치계는 여러 나라와 외교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공존과 상생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군사계는 전투력과 안보를 강화하고, 학계는 역사적 사실과 현실에 근거한 토론과 논쟁을 이어가야 한다. 종교계는 그들이 회개하고 건강한 국민성을 회복하고 국가 간에 더불어 잘 사는 범국가적 공동체 의식 회복을 위해 긍휼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각자가 선 자리에서 고유한 방법으로,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부분의 성도는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와 같이 순수하게, 주님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이 교회에서 혹은 다양한 기관에서 증오심과 적개심을 부추기고 과격한 정치적 대응을 주문하고 교회 내에서 당파적인 편을 가르고 줄서기를 강요하고 자신과 다른 줄에 서 있으면 사랑과 진리가 싸늘하게 식은 비판과 정죄의 칼을 마구 휘두르며 교회를 만인의 기도하는 집이나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적인 집단으로 바꾸려고 한다.
가짜뉴스 생산도 심각한 일이지만 교회 안에서 그런 뉴스가 먹힌다는 것, 유통과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 그것에 근거한 이념이 주님의 몸도 갈기갈기 찢는 지경까지 와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하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교회를 게바파, 바울파, 아볼로파 따위로 가르는 사람을 육신에 속한 자로 분류한다.
오랫동안 우리는 한국 교회 신앙이 세계에 으뜸이란 자위와 오해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으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를 나 자신부터 돌아보게 된다. 일본이나 북한이나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사랑의 구체적 실천에 있어서 나는 너무나도 부실하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사랑해야 한다는 지향점 고수에 있어서는 흔들림이 없으려고 한다. 그리고 온 우주와 만물과 역사를 품고 계신 하나님의 뜻인 사랑의 사명을 받은 교회는 당파나 국경선에 갇힌 이념의 노예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병수 (전주대 교수·선교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