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IT조직이 도박사이트 제작… 한국 범죄조직에 팔아넘겼다

입력 2024-02-15 04:06
북한 해킹 조직. 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단둥에서 활동하는 북한 IT조직 ‘경흥정보기술교류사’가 불법 도박사이트 수천 개를 제작해 한국 사이버범죄조직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자금을 조달·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조직이다. 국내 불법 도박 범죄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공개된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14일 경흥의 불법도박 사이트 개발·판매·운영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사진과 동영상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경흥의 단장인 1978년생 김광명은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정찰총국 소속으로, 39호실에 파견돼 경흥 운영을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원에 따르면 경흥은 조직원 15명이 분업 시스템을 갖춰 성인·청소년 대상 도박사이트 등 소프트웨어를 제작·판매했다. 이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중국에서 현금화한 뒤 1인당 매달 500달러(67만원)씩 평양에 상납했다.

한국 범죄조직들은 경흥이 북한 조직임을 알면서도 거래를 계속했다. 국정원은 북한 사람들이 요구하는 불법 도박사이트 제작 비용이 한국과 일본 개발자에 비해 30~50% 저렴하고 한국어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경흥은 불법 도박사이트 제작에 건당 5000달러, 유지·보수 명목으로 월 3000달러(약 400만원)를 받았다. 이용자가 늘어나면 월 2000~5000달러를 추가로 챙겼다.

경흥은 도박사이트 유지·보수 과정에서 개인정보도 빼냈다. 이렇게 확보한 한국인 이름과 연락처, 계좌번호 등 개인정보 1100여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해 판매를 시도했다.

정보·수사 당국은 이번에 적발된 국내 범죄조직이 도박사이트용 서버를 구매해 북한 IT 조직에 제공했고, 이들이 해당 서버를 우리 기업 기밀을 해킹하는 데 이용한 사실도 확인했다.

국정원은 “국내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사이버 도박 범죄 배후에 북한이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증거가 최초로 공개됐다”며 “이를 통해 수조원대 수익을 올린 한국 범죄조직에 대해서도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경흥 외에도 해외에서 사이버 도박 프로그램을 개발·판매하는 북한 외화벌이 조직원이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