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보호종료 9년째인 모유진(28)씨는 역경의 삶을 살아왔다. 어머니는 모씨를 낳은 직후 아버지와 이혼하고 떠났다. 그가 11살 되던 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고 이내 친척집에 맡겨졌다. 모씨는 학창시절 성폭력을 겪기도 했다.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옷장에서 숨어 지내는 적이 많았다고 한다.
모씨의 삶은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한 소설을 읽으며 달라졌다.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모씨는 소설의 주인공처럼 세상과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지난해 9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카페를 열었다.
카페명은 ‘아라보다’로 지었다. 아라는 ‘경작하다’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 ‘arare’에서, 보다는 도움을 원하는 자립준비청년을 알아본다는 말에서 따왔다. 과거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년에게 조언을 하고, 스스로 살아갈 힘을 주고 싶다는 뜻이 담겼다. 14일 국민일보와 만난 모씨는 “나도 아파봤기 때문에 아파하는 청년을 지나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곳은 모씨가 자신의 삶을 일구는 동시에 다른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공간이다. 직접 만든 음료, 수제 과일청, 굿즈 등을 판매해 월세를 내고 반려묘의 사료값 등을 마련한다.
모씨는 꿈을 가진 자립준비청년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그는 화가나 작가를 지망하지만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청년을 위해 카페 한쪽을 내어줬다. 청년들은 작품을 홍보하고 돈도 번다. 모씨는 자신처럼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을 인턴으로 채용한 적도 있다.
모씨는 자립준비청년을 상대로 멘토 활동을 한다. 모씨가 5년 전부터 도움의 손길을 건넨 자립준비청년만 1000명에 이른다.
바쁜 일상에도 모씨가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이유는 도움받는 것을 두려워했던 자신의 과거가 떠올라서다. 모씨는 “자립준비청년 중에는 과거 저처럼 도움받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아무런 도움 없이 사는 것을 자립이라고 착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상처가 있는 자립준비청년은 도움의 손길을 피해 아예 숨어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씨는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고 싶은 기업이나 재단도 그들을 찾지 못해 내게 먼저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모씨는 이런 자립준비청년에게 천천히 다가가 마음을 열게 하려 노력한다. 자신이 그간 겪어온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찾는다. 모씨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차근차근 알려주고 그들을 품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나도 그런 도움 덕분에 자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씨는 아라보다를 확장된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자립준비청년뿐 아니라 미혼모, 한부모가정 자녀 등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쉴 수 있는 보호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모씨는 “도움이 절실했던 때 안전한 공간을 찾아 옷장과 서점을 전전한 기억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소외된 이들에게 아라보다가 그런 안전한 곳이 되도록 꾸미겠다는 뜻이다.
모씨는 아라보다 내부에 자립준비청년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공간 마련도 구상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잠깐 머무는 공간뿐 아니라 청년들의 실질적 자립을 돕는 비즈니스 공간을 계획 중”이라며 “궁극적으로는 청년들을 위한 하나의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