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달이 머문다는 마을 이름처럼 에메랄드빛 바다가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내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지난 6년간 하수처리장 증설에 반대하는 해녀와 주민들이 제주도와 공사업체에 맞서 거리에 눕고 집회를 열며 극렬한 반대 움직임을 펼쳐왔다. 지난해 6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주민 설득에 나서면서 반대 주민 수가 줄었지만, 그간 증설공사 과정에서의 위법 문제를 지적해 온 일부 주민들은 소송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6년간 갈등이 이어진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증설 반대 주민 측에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제주지법 1심 재판부가 지난 2017년 제주도가 고시한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을 위한 ‘공공하수도 설치(변경) 고시’가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은 환경영향평가법상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이지만 사업자인 제주도가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며, “법규를 위반한 중대하고 객관적으로도 명백한 하자인 만큼 소규모 영향평가 없이 이뤄진 행정처분(고시)은 당연무효”라고 판시했다.
주민들은 무엇을 주장했나
동부하수처리장 증설사업은 총사업비 538억원을 투입해 제주시 월정리 동부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을 기존 1만2000t에서 2만4000t으로 확대하는 사업이다. 인구 증가로 제주(도두)하수처리장 시설 용량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제주도는 삼양동 하수를 동부하수처리장으로 분산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고, 2017년 7월 이 같은 내용을 고시해 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민 반대로 고시 5개월 만에 공사는 중단됐다.
주민들은 2014년 1차 증설 당시 더 이상 증설은 없다던 약속을 깬 제주도청에 먼저 분노했다. 연안 생태계 파괴에 따른 해녀 조업량 감소도 우려했다. 무엇보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미실시, 문화재 현상변경 신청서에 세계자연유산 기재 누락 등 절차적 위법성에 주목했다.
그동안 제주도는 이번 소송의 쟁점이었던 환경영향평가법 위반 여부에 대해 하수처리시설 설치 당시인 1997년 영산강환경관리청과 사전환경성 검토 협의를 마쳤고, 환경부 장관으로부터 최종 설치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이후 추진하는 증설사업에 대해 다시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제주지법은 27년 전 이뤄진 사전환경성검토 협의의견은 최초 건설공사에 대한 내용이고, 환경부 장관의 하수처리시설 설치인가 고시는 하루 처리용량을 1만2000t으로 명시하고 있으므로 이번 증설까지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제주도의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주민들이 제기해 온 절차적 문제를 사법부가 확인해 준 첫 판결로 의미가 크다. 제주지법은 증설사업에서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드러나 고시가 위법하기 때문에 그외 주민들이 제기한 세계유산법 위반 등은 들여다 보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제주도는 항소했다. 최종 판결이 아닌 만큼 공사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오름 있는 마을에서도 논란
환경기초시설 관리에 문제가 드러난 곳은 월정리만이 아니다. 몇 년 전 가수 이효리가 뮤직비디오를 찍어 사진 명소가 된 금오름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금오름이 있는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의 한 하수슬러지 처리업체에 제주시가 증설(3배) 및 소각시설 설치 허가를 내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민사회에 큰 파장이 일었다.
해당 업체는 폐기물 야적, 부적정 보관, 악취·대기 배출허용기준 초과, 행정조치 미이행 등 각종 환경오염 유발 행위로 최근 10년간 17번이나 적발된 곳이다. 2020년에는 하수슬러지와 슬러지를 섞은 부숙토 수천t을 야적하다 적발돼 2000만원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제주시는 2022년 1월 증설을 허가했고, 업체는 기존 하수슬러지에서 가축분뇨슬러지까지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마을회와 성이시돌목장 측은 증설 반대에 나섰다. 제주시가 지난해 두 차례 진행한 토양오염도 조사에선 중금속인 아연, 구리와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의 최대 6배까지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염이 확인된 구역은 지하수자원보전 1등급 구역과 맞닿아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제주시는 지난해 12월까지였던 계약기간을 갱신하지 않기로 하고 도외 업체에 하수슬러지 처리를 맡겼다. 해상운송비가 추가되면서 처리 비용은 더 늘었다.
갈등 자초하는 지자체
월정리와 금악리 사례는 제주도 환경부서 공무원들이 환경기초시설을 어떻게 위탁관리하는지 환경 행정의 위법·부당한 현주소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반복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제주시는 앞서 2021년 무허가업체와 한 해 84억원 규모의 폐기물처리 계약을 맺어 논란을 빚었지만, 이듬해 금악리 폐기물 업체에 증설을 허가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제주시는 무허가업체와 계약 당시에도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았다. 당시 제주시는 “동일 영향권역에서 업체만 바뀌었기 때문에 대상사업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이번 월정리 하수처리장 증설에서도 제주도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법을 준수하기보다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를 덮으려는 분위기가 기관 내부에 암묵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편의주의 속에서 제주도의 환경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주민들의 온당한 문제 제기는 갈등으로 치부돼왔다.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은 “제주의 최근 갈등 사례는 환경 이슈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행정 처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 지역사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일수록 적법하게 처리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