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림택권 (21) 한인연합교회서 목회 다시 시작… 부담감에 하나님 찾아

입력 2024-02-15 03:01
림택권(가운데) 목사가 1992년 아프리카 케냐로 선교여행을 떠나 현지 마사이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미국 필라델피아 한인연합교회에서 목회를 다시 시작하며 처음으로 개척교회가 아닌 다 갖춰진 교회를 섬길 수 있었다. 더구나 이 교회는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다. 특히 교회는 독일 계통 감리교회였는데 퍽 아름답고 고전미 있는 예배당 건물을 갖고 있었다. 전해 듣기로는 이 교회 건축 자재는 독일 본토에서 가져와 지었다고 한다. 교회는 처음엔 교포 몇 분이 모인 성경공부반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교회 3대 담임목사로 취임한 나는 전임자분들이 다져 놓은 좋은 여건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마치 차량에 이미 시동이 걸려 있고 운전석에서 그저 ‘D’(드라이브) 상태로 기어만 바꾸면 달릴 것 같은 차에 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개척할 때마다 되뇐 질문인 ‘네가 나를 누구라고 고백하느냐’고 물으시던 하나님의 질문에 계속 답하며 살기로 했다.

내가 이 교회에 부임할 때 당회원은 모두 여덟 분이셨고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고 계셨다. 안수집사님들 역시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 갓 이민 온 분은 발을 붙이기 힘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편으로는 ‘성수 주일’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분이 있을 정도로 한국에서 교회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분도 계셨다. 부족한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고심하다 보면,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취임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사임할 수도 없고 갈 곳도 없을 것 같아 고심이 많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 엎드리는 일뿐이었다. 한 주간 교회를 떠나 평소 즐겨 찾는 기도처로 향했다. 그때 내게 힘을 주신 말씀을 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모세를 택하시며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는 말씀이었다. “인도해 내라”고 하시지 않고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니. 평소 여러 번 읽었던 구절인데 그날따라 마음에 와닿았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인도하지만 실은 하나님이 모두 다 하신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이 말씀에 힘을 얻었고 이는 이후 내 목회의 지침이 됐다.

하지만 목회 사역을 하면서 깊은 비통함과 슬픔을 마주해야만 했던 순간도 많았다. 특히 나는 지금도 다니엘이라는 아이를 잊을 수 없다. 1994년 무렵 어느 여름이었다.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여름 성경학교를 도시에서 떨어진 어느 산속 수양관에서 가졌다. 수양관 앞에는 수영할 수 있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낮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위해 모였는데 다니엘이 안 보인다고 했다.

실종된 줄 알고 급히 그를 찾아다녔지만 호수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날 밤늦게 심방을 마치고 돌아와 전화를 받은 나는 다니엘의 부모님께 이를 알려드리고 함께 인근 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상에 누워있는 다니엘의 모습은 마치 편히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이때만큼 인간의 무능함과 비통함을 직시한 적은 없었다. 다니엘의 부모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인해 교회는 웃음을 잃었다. 깊은 슬픔에 잠긴 분위기 속에서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정리=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