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무근본 축제를 여는 마음

입력 2024-02-14 04:06

서툴러도 어설퍼도 즐기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일상은 매일 축제가 된다

살면서 몇 명의 꿈 이야기를 들어봤을까. 분명 적지 않은 사람의 꿈을 읽고 들었지만 유독 자주 기억나는 누군가의 꿈이 있다. 학부 시절 ‘프랑스 철학’ 강의 첫 시간, 나는 강의실 맨 앞줄의 가장 오른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프랑스와 철학이란 말에 지적 호기심이 발동해 신청했으나 첫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취소할 작정이었다. 강의 방향성과 시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첫 강의에서 교수님은 돌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나의 꿈은 우리 사회가 콘서트장 같은 열광 사회가 되는 겁니다. 미움도 슬픔도 없이 열광과 사랑이 넘치는 사회요. 불가능하겠죠. 근데 그걸 바랍니다. 이 수업이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은 기여하길 바랍니다.” 가장 오른쪽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 수업에 열광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업은 내 삶의 각도를 아주 많이 바꾸었다.

세상이 잔인하게 느껴지면 그 아름다웠던 꿈을 떠올렸다. 날이 갈수록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따금 그 꿈이 이루어지는 듯한 풍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요즘 ‘무근본 지역축제’를 진심으로 즐기는 사람들의 증언이 온라인상에 활발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각양각색 축제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알리는 글의 댓글에는 각자 좋아하는 지역 축제 이야기가 가득했다.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고작 ‘댓글’로 훑었을 뿐인데 절로 흥겨워졌다. 덕분에 원주 삼토 축제, 울산 옹기 축제, 의정부 부대찌개 축제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연천 구석기 축제에서 구석기 의상을 대여해 입고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꼬치에 고기를 꿰어 숯불에 바비큐를 해 먹는 게 최고라는 후기가 제일 인상 깊었다.

꽤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 축제들에 ‘무근본’이란 수식이 붙은 이유는 아마 ‘그럴듯하지 않음’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록 페스티벌이나 아트페어처럼 화려한 시설도 없고, 세련된 홍보로 포장되지도 못했기에 트렌디하지도 고상하지도 않다. 그러나 축제의 본질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라면 이들은 그 본질에 충실하다. 오히려 그 투박함과 자연스러움이 이 축제의 ‘근본’을 이룬다. 차림새나 인증샷에 연연하지 않고, 분석과 비판도 잠시 접어둔다. 어설프더라도 신나게, 거창하지 않아도 즐거운 열광의 시간이 흥으로 채워진다.

일상이 고단하면 여행이나 콘서트, 축제처럼 비일상으로 도망갈 준비를 한다. 이 무근본 축제들은 꽤 가까운 곳에서 낮은 문턱으로 우리를 기다려주는 친근한 도피처다. 각종 문화비용이 증가하고, 여가비용이 늘어나는 펀플레이션(fun+inflation) 시대에 이렇게 쉽고 가까운 도피처가 있었다니 안도가 된다.

어설픔과 불완전함이 흠이 되지 않는 축제를 즐기는 이 풍경은 나에게 신기한 용기를 준다. 오직 기쁨이 목적이라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 부대찌개나 구석기 대신 축제 대상을 일상과 나 자신으로 전환할 가능성의 용기다. 좀 모자라고, 허술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럴듯하지 못함이 흠이 아닌 흥으로 작용한다면 내 일상도 당연히 축제가 될 수 있다. 생활의 몇몇 장면에 축제를 붙여보니 자연스레 모두 말이 된다. ‘아침 샤워 축제’ ‘점심 커피 페스티벌’처럼 당장 ‘무근본 축제’가 될 일상의 소재가 넘쳐난다.

단상의 양 모서리를 두 손바닥으로 짚고 다소 들뜬 표정으로 ‘꿈’을 이야기하던 교수님의 진짜 의도는 어쩌면 이게 아니었을까. 나 자신이 무대가 되고 일상을 콘서트로 만드는 마음을 갖는 것. 축복과 환희만 있는, 열광과 만끽만 남은 순수한 사랑으로 일상을 누리는 태도가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도 있다. 진짜 신년을 맞아 나 자신을 위한 더 많은 축제를 열 것을 다짐한다. 서툴러도 응원하고, 어설퍼도 그저 즐기며 나와 내 일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마음으로 제1회 아침 샤워 축제를 시작하려 한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 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