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잠은 다음 날 쓸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시간에 불과했다. 현실에 쫓겨 내달리느라 자정을 훌쩍 넘기고서야 몸을 어둠 속에 뉘었고, 누적된 피로는 그림자처럼 온종일 발끝을 따라다녔다. 하룻밤 수면의 질이 일주일의 컨디션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반복되자 차츰 일상의 활기를 잃었고 맹신했던 건강에 경고등이 켜졌다.
현대사회에서는 수면이 선택 가능한 옵션처럼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긴장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숙면이야말로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 잠은 전두엽 기능을 강화해 기분을 전환하고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하여 통증을 완화시킨다. 특히 뇌에 축적된 대사산물을 씻어내는 건 잠을 자야만 생기는 기능이라고 하니 잠이 보약이란 말이 일리 있었다. 인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면시간도 아낌없이 잘 써야 깨어 있는 시간도 건강할 수 있는 셈이다.
퇴근시간을 앞당겨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았다.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생활이 숙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서다. 출근길에 햇빛 샤워를 하며 1시간을 걸었고 저녁 7시 무렵 귀가했다. 잠자기 전에는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가벼운 습관을 들이는 게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해 시집 한 권과 물 한 잔을 침대 옆에 두고 핸드폰은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두었다. 2주 전만 해도 바쁘게 일하고 있었을 저녁시간에 보송보송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시집 몇 쪽을 읽었다. 고요하게 밤이 깊어가고 몸과 마음은 차분하게 잠의 세계로 녹아들었다. 새벽녘에 뒤척이거나 옅은 꿈도 꾸지 않았고 눈꺼풀에 걸리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을 때 몸이 개운하고 마음이 편안했다. 단잠을 잔 덕분인지 하루가 맑고 상쾌했다. 질 좋은 잠은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쉼터, 활기를 불어넣는 보약이었다. 매일 밤 맞이할 수 있는 달콤한 휴식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