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사 단체가 총파업(집단 진료 거부)을 검토하면서 설 연휴 직후 의료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는 대화로 좁혀질 수 없는 사안이어서 강대강 대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의료계는 총파업을 불사해서라도 의대 증원을 저지하는 것이 국민 보건을 위한 일이라고 주장하나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집단 행동은 어떠한 명분도 없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의 핵심은 의사 인력 수급을 바라보는 시각차에 있다. 정부는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5년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35년 의사 1만5000명 부족이 예측되는데 이 중 1만명을 의대 증원으로 충원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의사 단체는 현재도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고 맞선다. 특히 활동 의사 증가율이 OECD 평균보다 높아 지금의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47년엔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서게 된다.
하지만 연구원은 2013년 “의대 정원을 확대하지 않고도 2023년, 늦어도 2026년엔 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047년이란 시점은 10년 전 추계 때보다 의대 정원 문제 해결 시점을 20년이나 늦춰 잡은 셈이다. 이미 한 차례 전망이 틀렸는데도 의협은 여전히 의사 부족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는 정부가 제시한 추계 근거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반발한다. 이제 와서 정확한 수요 예측을 위해 정부와 의협이 함께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등을 설치해 적정 규모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의협은 의대 증원 적정 규모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난해부터 28차례 열린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규모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못했다.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직전 복지부가 공문으로 증원 규모를 물었지만, 의협은 여기에도 답하지 않았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보건사회연구원, 홍윤철 서울대 교수가 제시한 연구 결과를 참고했는데, 이게 과학적이지 않다면 과연 무엇이 과학적인가”라고 반문했다.
의협의 의대 증원 저지의 가장 큰 명분은 대규모로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증가하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국민건강보험 연구 결과를 들어 의사 1000명당 의사 1명이 늘면 의료비가 22%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의사들이 파업을 검토하는 이유도 결국 의대 증원을 저지해야 국민 보건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역시 낡은 이론이라고 정부는 반박한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료계 주장은 1970년대 ‘유인수요론’에 근거한 것인데 ‘의사들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은 이미 선진국과 국내 연구에서 상관관계가 없음이 증명됐다”며 “오히려 의사가 적으면 인건비가 올라 의료 가격이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의협의 반대 이유 중 하나는 증원 규모가 너무 많아 의학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25학년도 입시부터 2000명을 증원하게 되면, 현재 정원(3058명)의 65.4%가 증가한다. 의학 교육 특성상 실습이 중요한데 실습장비는 물론 가르칠 사람도 부족해 결국 교육이 부실해질 것이란 우려다.
의협 측 양동호 협상단장은 “기초 교수만 30~40명이 필요하고, 임상으로 올라가면 교수 수백명이 필요한데 감당이 되겠냐”고 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금도 학생 1명 당 교수는 법정 비율(1대 8)보다 여유가 있고, 앞으로 교육에 차질 없도록 준비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양쪽 입장 차가 첨예해 추가 대화를 하더라도 협상의 여지는 적어 보인다. 결국 총파업에 대한 여론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장 의협은 15일 전국 16개 시도의사회를 중심으로 궐기대회를 연다. 박 차관은 “10조 플러스 알파의 (필수의료) 투자 계획도 밝혔는데, (의사들이) 파업하면 어떤 국민이 지지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80% 이상으로 나오는 만큼 의협의 총파업은 명분이 없어 국민이 외면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다만 전공의들까지 파업에 동참해 의료 현장마다 차질이 빚어지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중환자실·응급실·투석실 등에서 의료대란이 현실화하고, 정부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020년 문재인정부 때처럼 의대 증원을 끝까지 고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한 ‘빅4’(서울대,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아산) 전공의들은 파업에 ‘찬성’ 뜻을 모았다. 대전협은 이날 오후 9시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소집하고 총파업 등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김유나 차민주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