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나토 공격 권유’ 트럼프 폭탄 발언에 전 세계 발칵

입력 2024-02-13 04:05
2019년 12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무언가를 말할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 나토에 대해 냉담한 트럼프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AP연합뉴스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우방보다 적국을 편드는 발언으로 세계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다시 입성하면 세계 질서에 광범위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고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러시아가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동맹국을 침략하면 “방어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가) 원하는 것을 하라고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대응한다는 나토의 집단안보 정신에 어긋난다.

NYT는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가면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유럽, 아시아, 중남미, 중동의 우방을 지켜온 안보 우산이 끝장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하려면 상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식 탈퇴 없이 나토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NYT는 유럽 동맹국이 미국에 기댈 수 없다면 미국과 상호안보협정을 맺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며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을 우려했다. 이어 “역사는 (이런 발언이) 전쟁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이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방위선인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만에 북한이 남침한 사실을 언급했다.

CNN 등은 트럼프 발언에 대한 반발을 상세히 전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동맹이 서로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는 우리 모두의 안보를 훼손하고 미국과 유럽의 군인을 위험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피터 리케츠 상원의원은 엑스(옛 트위터)에서 “트럼프는 나토가 마치 ‘국내총생산(GDP)의 2%를 지불하면 방위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트리클럽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동맹국 간의 신뢰를 심하게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나토 31개 회원국은 GDP의 최소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약속했지만, 11개국만 이를 지켜 트럼프의 공격을 받고 있다.

블라디슬라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도 엑스에서 “동맹국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은 나토 전체를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며 “어떤 선거운동도 동맹의 안보를 갖고 장난치는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푸틴에게 더 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청신호를 주려 한다. 끔찍하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대선후보를 놓고 트럼프와 경쟁 중인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도 CBS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정적을 살해하는 푸틴을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BC는 “그 발언은 아마도 진심은 아닐 것이다. 자극적인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비평가들을 화나게 하며 지지자들을 흥분시키는 트럼프의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푸틴이나 시진핑이 동맹을 수호한다는 미국의 의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오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세영 선임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