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의사들의 도를 넘어선 발언이 분노를 키우고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최근 SNS에서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리석다”고 말했다. 나아가 “겁을 주면 의사들은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며 비꼬기까지 했다. 마찬가지로 전 의협 회장인 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 역시 “지방에 부족한 건 의사가 아니라 민도”라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주 대표는 ‘민도’란 단어를 뒤늦게 ‘환자’로 바꾸긴 했지만 본심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이들의 발언 속에서 의사 집단은 국민과 정부 위에 있고 아무도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특권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개탄스러울 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꺼낸 카드가 아니다. 다른 직역과 달리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9년째 3058명으로 동결됐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사 달래기를 위해 정원을 400여명 줄여줬고 이후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2020년에도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가 의료계 총파업에 중도 포기했다. 그러는 사이 의사가 부족해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현상이 속출했다. 세계 최고의 고령화 추세로 의료 수요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자칫 의사 수를 늘리지 않다간 의료 체계 마비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 조사에서 응답자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은 의사와의 힘겨루기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위기의식이 부른 결과물에 가깝다.
특권의식의 발로가 아니라면 의사들의 총파업 불사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의협은 의대 증원이 일방 추진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28차례 정부-의협 간 협의체가 열렸다. 진전이 없었던 것은 의대 증원 논의에 전혀 협조하지 않은 의협 때문이다. 오히려 의사 측 요구인 수가 인상,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의 큰 틀을 정부가 대부분 받아들였다. 일부 이견과 구체 항목들은 협의를 통해 충분히 조율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어제 온라인 총회로 파업 참여를 타진한 데 이어 의협은 오는 15일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궐기 대회를 열기로 했다. 지금까지 누리던 특혜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다는 아집 아닌가.
의사들의 시대착오적 발언은 2000년, 2020년 파업 때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전례에서 나온 듯하다. 하지만 “의료 환경을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국민의 분노도 임계점에 달해 있다. 의사들이 이제는 국민과의 공감대를 늘리고 시대 변화를 따라 가야 한다.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대체 불가능한 의사의 위상이 훼손될 리 없다.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을 의사들도 잘 알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