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신앙을 우습게 보는 풍조가 팽배합니다. 아마도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구원론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이 믿음을 단순하게 천국행 표 받은 정도로 오해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세아연합신학대 한철하 명예총장은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적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명제 안에는 어마어마한 축복과 실재가 담겨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자가 천국 시민이 됐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진리가 있을까요.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믿는다면 결코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신앙을 가볍게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이 개인적인 확신 없이 어떻게 주님 앞에 설 것인가요.
저는 청소년 시절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여러 해 동안 감격 가운데 살았습니다. 지금도 이 은혜에 대한 감격이 샘솟듯이 용솟음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더 균형 있게 성숙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국의 현재성도 균형 있게 강조될 필요가 있으며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도 동시에 균형 있게 강조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 자체는 너무나 중요한 고백입니다.
성경 신학은 유명한 성경신학자 G.보스가 지적한 대로 평면 퍼즐 게임이 아닙니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성경해석학 포이스레스 교수는 ‘교향악적 신학’을 주장했습니다. 진리의 균형감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권을 강조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공간적 특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주권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인간의 책임을 약화할 수 있습니다. 신앙에는 개인적 측면도 있고 공동체적 측면도 있습니다.
오늘날, 구원 신앙이 빠진 하나님 나라 운동들이 결국은 모두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기본적 진리를 무너뜨리지 마세요. 어느 사도가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구원 진리를 파괴한 적이 있는가요. 사도 바울도 구원 진리의 중요성(롬 1~8장)을 견고하게 세우고 나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던가요. 선한 양심을 강조하는 사도 베드로가 구원을 경홀히 여긴 적이 있습니까. 행위를 강조하는 야고보가 구원 진리를 경홀히 여기고 있습니까. 오히려, 사도들은 구원 진리를 초석으로 다진 후에 성도의 삶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신앙은 이렇게 중요합니다(히 2:3).
예수 믿고 천국 가는 신앙을 무너뜨리는 자는 기독교의 뿌리를 뒤흔드는 것입니다. 구원 진리를 무시하는 자는 결국 기독교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은 구원 진리를 무너뜨린 서구 교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또 새 예루살렘은 우리에게 우주적 교회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종족, 민족, 나라를 초월한 우주적 개념의 영원한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한국교회에는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아직도 미약해 보입니다. 여전히 교단 중심적, 개교회 중심적인 신앙 형태가 지배적이죠.
교회의 공교회성을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며 고백하면서도 아직도 교회의 하나 됨은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부정부패를 없애는 일에 앞장서야 할 기독교인들, 심지어 목회자들까지 지역주의에 편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까지도 정체성이 혼돈돼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김추성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김추성 목사는 총신대학교 교회음악과(B.M.)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을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신학 석사(Th. M.)학위를,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에서 박사(Ph. D.)학위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