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를 즐기는 직장인 정모(38)씨는 매주 주말이면 포털에 ‘대형마트 휴무일’을 검색한다. 이번 주 동네 인근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으로 인해 휴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온라인 식자재 구매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열고 고기와 야채 등을 구매했다. 한 시간 뒤쯤 주문한 상품들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겨 문 앞에 배달됐다. 정부가 12년간 이어진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휴업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2012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 규제의 취지가 온라인 유통업체의 급격한 성장으로 무색해졌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대형마트 줄고, 온라인 쇼핑 늘고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에 영업시간 제한을 명령하거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지자체장이 오전 0~10시 범위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할 수 있고, 매월 공휴일 2일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 있다. 평일도 의무휴업일로 지정할 수는 있지만 마트 노동조합·소상공인 단체 등 이해당사자와 합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이에 따라 전국의 대부분의 지자체에선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공휴일로 지정했고, 영업시간 제한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형마트 의무휴업 완화를 규제개혁 1호 공약으로 내세웠던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국민의힘 지자체장이 당선된 지역을 중심으로 휴무일을 평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형마트가 매주 일요일 문을 여는 곳은 대구와 충북 청주, 서울 서초구·동대문구 등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는 사이 반사이익은 이커머스 업체들이 누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주요 유통업체 중 대형마트의 매출 비중은 2014년 27.8%에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12.7%로 급감했다. 온라인 유통업체의 매출 비중은 같은 기간 28.4%에서 50.5%로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보호 대상이었던 전통시장은 빛을 보지 못했다. 김지향 서울시의원이 2019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19만여명의 서울 지역 카드 지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인 둘째·넷째 주 일요일에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등의 소비는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423개였던 대형마트는 2023년 401개로 22곳이 폐점했다. 김 의원은 “약 3만여명이 일자리를 잃고, 폐점 마트 주변 상권도 무너진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소비패턴 변화로 달라진 현실에 맞춰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는 물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등에 대한 지원 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골목상권 외면” VS “상권 살리는 길”
소비 침체로 위축된 대형마트 업계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간 부진했던 업황을 반전시키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바꾼 서초구의 경우 휴일 매출이 평일보다 많게는 2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처음으로 의무휴업일이 정상영업일로 바뀐 지난달 28일 이마트 양재점의 매출은 전주 일요일 대비 약 10%가량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대형마트 업계는 의무휴업일 전환이 일부 자영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형마트 인근 유동인구가 늘면 지역 상권에 활력을 줄 수 있고, 지역 경제가 동반 성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이 2019년부터 4년간 서울시내 대형마트 주변상권 카드매출액을 조사했을 때 대형마트가 휴업하는 일요일의 주변상권 매출이 영업하는 일요일 매출보다 1.7%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기간 유동인구는 0.9% 낮았다.
의무휴업일 변경을 놓고 소상공인 단체 내에서도 구성원 간에 의견이 엇갈린다. 한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농·축·수산물을 취급하는 소상공인들은 규제 완화가 골목상권을 외면하는 처사라고 반발하지만 마트 인근에서 미용·의류 소매점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의무휴업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이 소속된 단체가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로자의 휴식·건강권을 두고도 입장이 엇갈린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어렵게 얻어낸 주말 휴식권이 축소되는 것이라고 반발한다. 방문객이 몰리는 일요일은 더 많은 사람이 매장에서 일해야 해 근무 조정이나 휴가 사용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띄엄띄엄 주어지는 평일 휴무로는 회복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한다.
하지만 사무직 근로자들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주말 휴무를 보장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맞선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신규 출점은커녕 기존 점포들의 폐점을 고민할 만큼 마른 수건을 짜내는 상황인데도 휴식권을 요구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견이 전보다 커졌다”고 했다. 서비스업 특성상 주말 근무가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대형마트가 다양한 매장과 콘텐츠로 변모해온 만큼 주말에도 가족들과 쇼핑·문화생활을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대도시는 물론 지방 소도시에도 점포를 둔 대형마트들이 영업시간 제한 없이 넓은 배송 권역과 빠른 배송을 무기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든다면 이커머스 업계와의 경쟁에서 발생하는 편익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법 개정은 총선 이후에나
다만 의무휴업일의 평일 전환 등 원칙을 바꾸는 건 법안 개정이 필요해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이달 소관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를 열고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논의에 나서겠다는 목표지만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 상임위 일정을 잡기도 쉽지 않다. 전통시장과 중·소상공인을 대변해온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도 크지 않다. 여권 역시 현 정부의 공약 달성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지만 소상공인 이슈를 건드렸다가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 만큼 접근하기에 조심스럽다.
정부는 법 개정에 앞서 여권 지자체장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조례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이슈에 대한 국민의 호응이 올라오고 서서히 올라오고 있지만 현 국회에서는 추동력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본격적인 논의는 총선 이후 새로운 상임위가 꾸려져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