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에 새는 반도체·배터리 기술… 관련 법 개정은 법사위서 발목

입력 2024-02-07 04:05

한국 산업 경쟁력의 중추인 ‘핵심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5년간 정보 당국에 적발된 사례만도 96건에 달한다. 그중 40%가량이 반도체 기술이며, 대부분 사례가 중국 자본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이를 실행하기 위한 관련 법 개정은 지지부진하다. 보호망을 마련할 수 있는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기술 해외 유출 사례는 23건으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았다. 3년 연속 20건을 넘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적발 사례는 사전에 차단된 경우보다 이미 유출된 후 적발됐을 가능성이 크다. 산업부 관계자는 “사실상 기술이 유출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 기술력을 보유한 반도체 부문 유출이 가장 많다. 최근 5년간 반도체 기술 유출 사례는 38건으로 전체 적발 건수(96건)의 39.5%를 차지했다. 이 중 2022년과 지난해 적발된 건수가 각각 9건과 15건이다. 최근 들어 기술 탈취 시도가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중국 자본과 결부돼 있는데, 방식은 진화하고 있다. 최근 중국 장성기차의 자회사가 한국에 기업을 설립하고 숙련공을 고용한 뒤 배터리 기술을 빼돌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을 탈취하는 전통적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국 판례도 그렇지만 해외의 사례도 대다수가 중국 자본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벌금 상향, 손해배상 강화, 핵심 기술 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하반기 중 ‘5차 산업기술보호 종합계획’도 수립할 예정이다. 하지만 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일부 업계에서 지나친 규제라고 반발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산업부 관계자는 “국가가 직권으로 국가핵심기술 해당 여부를 기업에 통지하도록 한 부분과 외국인이 핵심기술 보유 기업 인수합병에 나설 경우 외국인도 신고토록 한 부분에 대해 국회와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