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검토 중인 정책이 ‘테마주 찾기’로 변질되는 모습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비교 공시로 상장사가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한다는 취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저PBR 종목의 변동성 확대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당국은 기업가치 제고가 목표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자본시장 체질 개선이라는 정책 목표가 요원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스피 전체 PBR은 0.95배로, 미국 4.55배·인도 3.69배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수치로, 1배 미만이면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팔아도 시총보다 많다는 의미다. 기업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쓰인다. 당국은 이달 발표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PBR을 비교 공시하는 대책을 담을 예정이다. 상장사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 주주환원책을 통해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게끔 유도한다는 취지다.
새로운 정책 예고에 시장은 곧바로 저PBR 종목 찾기에 혈안이 됐다. 대표적 저PBR 업종으로 꼽히는 증권과 은행주가 급등했다. 은행·보험·증권 업종의 PBR은 0.4배 수준으로, 주주 환원 여력이 크다는 인식이 퍼졌다. 금융위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언급한 지난달 24일 이후 지난 2일까지 KRX 증권 지수는 16.7%, 은행 지수는 16.4% 올랐다. 하지만 상승 랠리는 지난 5일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단기간 급등에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다. KRX 은행 지수는 5~6일 이틀새 5% 가까이 하락했고, 은행 지수는 3%대로 떨어졌다.
일부 종목이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이자 당국은 진화에 나섰다. 핵심은 저PBR 종목 자체가 아니라 상장사가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증시 부양 대책을 발표도 하기 전에 시장 과열로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정작 발표 이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키움증권은 보고서에서 “단기간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달성한다고 상정하기보다 긴 호흡에서 실현 가능한 목표로 상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단순히 PBR만 낮은 기업에 투자하면 밸류트랩(저평가 오인)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에는 기업이 주주환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인데, 정작 금융 당국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 도입을 보류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날은 인수·합병(M&A) 공시 강화, 외국인 투자자 결제 리스크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공시 항목에 합병 추진 배경, 합병 상대방 결정 이유 등을 포함하도록 했다. 일반 주주가 합병 진행 경과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하는 취지다. 또 합병 목적, 합병가액과 거래조건의 적정성 등에 대한 이사회 논의 내용도 공시하도록 의무화한다. 합병가액 산정 과정에 관여한 기관은 외부평가기관으로 선정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계열사 간 합병 시에는 합병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감사위원회 의결이나 감사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투자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이달 중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환전할 때 시차 문제 등으로 결제에 실패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취지다. 이날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영국 런던에서 글로벌 투자자 설명회에 참석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환전 대금 결제 실패 위험이 국제 기준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다. 그는 외환 제도와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력이 한국 자본시장의 매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심희정 기자, 세종=김혜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