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사건 2심에서 소송 제기 10년 만에 승소했다. 국가의 위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이 뒤집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2011년 불거진 후 법원에서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3명에게 각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총 인정 금액은 1200만원이다.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에 대한 정부 유해성 심사와 공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우선 정부 유해성 심사가 불충분하게 이뤄졌고,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안전성이 보장된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정부가 이 같은 고시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것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 행위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 5명 중 2명은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조정금을 상당 액수 지급받았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나머지 3명의 위자료는 이미 받은 정부 지원금과 구제급여 등을 고려해 정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등 13명은 2014년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2016년 제조업체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국가 청구는 기각했다. 이후 원고 중 5명이 국가 상대 부분만 항소해 2심이 진행됐고,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등을 상대로 낸 별개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처음으로 확정하기도 했다. 법원은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천식이 악화한 피해자에게도 제조사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등 관련 사건에 잇따라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다.
이번 판결은 다른 국가 상대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국가가 피고로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손해배상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1심에만 최소 6건이 계류 중이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