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접하는 풍경 하나. 아침에 봉고차가 아파트 입구로 들어온다. 중년의 남녀가 배웅을 한다.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타는 이들은 유치원생이 아닌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바로 노치원(노인+유치원)생이다. 노치원의 정식 명칭은 노인 주간보호센터다. 은천노인복지회가 1992년 10월 서울 동대문구에 문을 연 132㎡(40평) 규모의 ‘노인 주간보호소’가 노치원 시초로 알려져 있다.
중증 질환자가 치료를 받는 요양병원, 종일 외부 시설에서 지내는 요양원과 달리 집에서 자고 아침, 저녁엔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낮 동안 또래 노인들과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유대감과 안정감을 얻는다. 다만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아야 이용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노치원은 2017년 2795곳에서 2022년 말 5000여곳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유치원 수는 급감해, 어린이집·유치원에서 노인 요양 시설로 변경 운영된 사례가 같은 기간 82곳에 달했다.
갈수록 수요가 많아지고 가족 선호도도 높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지는 않는 것 같다. 65층 초고층 고밀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소유주와 주민들이 최근 노치원 입주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다. 서울시가 재건축 조건으로 노치원 설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새 서울 마포구,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집값이 떨어져서’ ‘아이들이 불안해서’ ‘저소득층이 이용할 것 같아서’ 등 이유도 다양한데 결국 노치원을 혐오시설 취급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부터 국내에서 개봉되는 일본 영화 ‘플랜 75’는 청년층의 부양 및 재정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가 가족 동의 없이도 75세 이상 노인의 죽음(안락사)을 지원하는 내용을 다뤘다. 충격적이긴 한데 저출산·고령화가 극심한 우리나라도 먼 산 바라보듯 할 수 없는 주제다. 노치원에 대한 혐오나 배제는 미래의 ‘플랜 75’로 이어질 수 있다. 언젠가는 누구나 노치원을 이용해야 한다. 이를 아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