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에 저항하다 숨진 고(故) 정선엽(사망 당시 23세) 병장의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2단독 홍주현 판사는 5일 정 병장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 1인당 2000만원씩 총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 용산 국방부를 지키는 헌병이었던 정 병장은 제대를 3개월 앞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지하 벙커에서 초병 근무 중 반란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국방부를 점령한 반란군이 정 병장의 소총을 빼앗으려 했지만 정 병장은 “줄 수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정 병장은 한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에도 이런 사망 과정이 담겼다.
오랜 기간 총기사고로 은폐됐던 진실은 2022년 3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졌다. 위원회는 정 병장이 반란군에 저항하다 총격에 숨진 것으로 결론 내렸고, 국방부는 정 병장의 죽음을 ‘순직’에서 ‘전사’로 바꿨다. 유족들은 정 병장의 사망 경위를 규명하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은 국방부 B-2 벙커에서 근무하던 중 반란군의 무장해제에 대항하다 살해됐음에도 국가는 계엄군 오인에 의한 총기 사망사고라며 순직으로 처리해 망인의 사망을 왜곡하고 은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의 위법한 행위로 망인의 생명과 자유, 유족들의 명예 감정이나 법적 처우에 관한 이해관계 등이 침해됐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