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5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경영권 승계만을 위해 진행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합병에는 삼성물산의 합리적·사업적 필요성이 있었던 점이 인정되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보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이 회장에게 유죄가 확정됐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도 “당시 대법원판결에서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가 되는 승계가 이뤄졌다는 판단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무죄 판단과 대법원 유죄 판결 내용이 배치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번 재판 혐의의 뼈대는 이 회장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에 불리한 조건의 합병이 이뤄졌다는 ‘부당합병’ 의혹과 제일모직 가치를 높이기 위해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제일모직 자회사)의 회계장부에서 4조5000억원을 과다계상했다는 ‘분식회계’ 의혹으로 나뉜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이 회장이 부회장으로 부임한 2012년 ‘프로젝트-G’(Governance 지배구조)라는 제목의 승계계획안을 작성했다. 검찰은 이 회장의 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위한 불법 합병이 계획된 증거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4년 5월 고(故) 이건희 전 회장이 와병하면서 계획안을 토대로 한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고 본다. 이 회장과 미전실이 공모해 합병 시기를 임의 결정하고 승계안에 맞춰 합병 명분을 끼워 맞추는 등 삼성물산과 주주 이익과는 관계없는 부당한 합병을 전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지주회사격인 삼성물산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제일모직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기 위한 부정행위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는 “이 합병은 시장에서 오래전부터 전망하던 시나리오 중 하나”라며 “이 회장과 미전실이 이 사건의 합병을 자의적으로 결정했다고 보기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프로젝트-G 문건의 존재는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 사망 시 막대한 상속세로 인한 지분 감소 등 변화에 대응해 여러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보고서일 뿐 이 회장 이익을 위해 삼성물산과 주주들에게 손해가 되는 승계 행위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합병 목적에 관해서도 “여러 검토를 거쳐 합병의 사업적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고 이사회의 실질적 검토를 통해 추진됐다”고 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1대 0.35’라는 합병비율이 이 회장에게만 유리하도록 설정됐다는 검사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는 합병 당시 시장에서 제일모직의 주가가 고평가됐고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합병 과정에서 회계법인 보고서 조작, 주요사항 은폐 등 위법 수단이 사용됐다는 혐의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앞선 대법원 판결도 부당 합병의 근거로 볼 수 없다는 취지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은 미전실 주도로 승계작업을 계획했다는 것이지, 삼성물산 의사에 반해서 승계를 추진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밝혔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거짓공시·분식회계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이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탐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